선조의 기록과 유고 묶어…1천116쪽 이르는 방대한 기록

평산신씨 우지종중에서 펴낸 평주세고.
전통사회가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전국에 종중을 구성해 지켜오는 전통이 종가의 활동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많은 종가 가운데 경북에 종가가 다른 지방보다 많아 경북도에서는 의미 있는 정책을 펴 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평산신씨 우지종중(도유사 신현봉)에서는 평주세고(집필·편집 신후식)를 발간해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평주세고의 평주는 평산의 옛 이름이고 세고는 여러 대의 유고를 모았다는 뜻이다.

평산신씨 우지종중 측은 1천100여 년 동안 선조들이 이룬 덕업(德業)을 선양하기 위해 시조인 고려개국 공신 태사 장절공(신숭겸)으로부터 22세(世) 인천 도호부사를 지낸 낙봉공(신숭구)까지는 직계의 선대 유고와 사적만 실었고, 낙봉공의 후손으로서 유고나 실기가 있는 35세까지 돌아가신 분의 유고를 조사해 196분을 집필 편집했다.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문희공(신개)은 파조인데 왕조실록의 기사만 700쪽이 넘어 이 세고에서 생략하고도 1천116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다. 한문으로 된 유고는 번역하고 문집은 서문, 목차, 행장, 발문을 번역 해제하고 호(號), 관직, 자, 택호 등에서 존호를 취하여 종, 지파 순으로 엮었다.

편저자는 발간사에서 “선조들의 유작은 그분들의 삶의 정수이기에 남은 글 한 줄도 고전일 수밖에 없고 다시 읽어야 하는 고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조가 남긴 고문서 한 장도 금은보화 못하잖게 귀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의 어제라는 말에서 오늘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본다”며, “지난날 역사와 기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지혜를 발견하고 미래를 구상하여 오늘을 살아갈 힘을 축적하는 데 도움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경제사장을 지낸 신상민 종손은 축사에서 “선세(先世)의 남은 문적에 선현의 문학과 사상과 철학이 담겼지만, 한문본이라 난관에 봉착했었다. 후손의 혈연 단체인 종중은 숭조위선(崇祖爲先)과 돈목종친(敦睦宗親)과 후손육영(後孫育英)이라는 공동목표를 가졌기에 봉제사하는 것을 넘어 조상의 숭고한 뜻을 찾아 기리는 이 같은 일은 가치 있는 쾌거”라 했다.

또 신상철 전 대구광역시 교육감은 축사에서 “훌륭한 선조가 있어도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지 않음은 이 또한 불효라고 한 것(父祖有善而 子孫不暴白 則亦不孝也)은 선조의 업적을 나타내는 데 등한히 하는 후손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말”이라며 “처음으로 발굴된 여러 유고와 기록들이 선조 한 분 한 분 삶의 단편이고 흔적들로 선지(先志)를 함께 이해하고 전승하는 데 꼭 필요한 필독서”라고 했다.

도유사 신현봉씨는 축사에서 “우리 종중은 훌륭하고 탁월한 위업을 성취한 많은 선조를 모셨는데 그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이 없었다. 평주세고의 발간은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그 의미가 매우 크며 잊혀 가는 선조들의 위업과 훌륭한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후손에게 긍지를 심어줄 것”이라 했다.

한편 평주세고에는 장절공신선생실기 증보편, 황의옹실기, 인재선생문집 속집, 동호실기, 장령공실기, 나은실기, 낙봉유고, 평거재실기, 여봉유고 속집, 병옹유고, 이강유고, 사거유고, 침천유고, 하벽유고, 자중유고 등 오랜 노력 끝에 새롭게 찾은 유문도 여러 편도 실려 있다.

새로 발굴한 자료에는 족보 등 기존의 기록과 다른 점도 있어 더 많은 궁구(窮究)가 필요하고 집필, 편집 과정에 인용한 참고문헌만 292종이고 선현들과 주고받은 문헌의 수록 저자는 인명 색인을 붙였는데 548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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