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제2부처바위.
남산에는 탑골 ‘옥룡암’을 사이에 두고 2개의 부처바위가 있다. 제1부처바위(보물 제201호)는 위쪽에 있고, 제2부처바위는 아래쪽에 있다. 서로의 간격이 500여m쯤 된다. 제2부처바위는 탑곡 마을 입구 ‘월정사’란 개인사찰 뒤편 산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대나무 숲에 가려 찾기가 수월치 않다. 언덕에 누운 큰 바위에 불상, 탑, 전각, 보살 등 불가형상들이 선각 되어 있다. 오랜 세월 마모되어 선명치 못하지만, 불가 세상의 일부를 상징해 놓은 듯하다. 주변에도 큰 바위들이 무리를 지어 있어, 예전부터 이 일대가 민간신앙의 기도처나 제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경주 남산 옥룡암.
옥룡암(玉龍庵)은 통일신라 시대 명랑법사 계종인 ‘신인사(神印寺)’란 대사찰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1924년 박일정 스님이 창건했다. 대웅전, 칠성각, 관음전, 추성각 등이 자리해 있고, 정원 입구에 안양교, 석탑부재, 작은 용소(龍沼)가 있는 아담한 절이다. 계곡의 맑은 물과 빼어난 경관으로 사시사철 시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시인 이육사 선생(1904-1944)이 이 암자에 기거했다. 1942년 여름 신병요양 차 3개월간 머물었을 때, 친구 신석초에게 보내는 시조와 편지글이 전해온다. 편지글은, ‘옥룡암에서’ 제하(題下)로, 여기에 자기가 있다는 안부 글이며, 시조 2절은 ‘경주 옥룡암에서 신석초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인인 그가 유일하게 쓴 시조이다. 아픈 몸과 외로움으로 친구를 기다리는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경주 남산 옥룡암 삼소헌.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울까 하노라”
(이하 2절 생략)

이 시조는 친구(신석초)에게 보낸 엽서에 기재된 것이며, 안동 이육사 문학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가 기숙했다고 전하는 기도원인 ‘삼소헌(三笑軒)’ 앞에 서니, 빛바랜 기와집이 한나절 땡볕 아래 쥐죽은 듯 고요하다. 여기에서 유명한 시 ‘청포도’ 초고를 구상했다고 전해온다.

경주 남산 옥룡암 현판 ‘일로향각’.
이 절 대웅전 옆에는 3칸짜리 전각이 있고, 현판에 ‘일로향각(一爐香閣)’이라 쓰여있다. 추사(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졌다. 이는 추사가 조선 후기 영남의 대찰인 ‘통도사’나 ‘은해사’에 남긴 글에서 모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일로향각은 대찰의 큰스님이 거처하는 전각으로 향로전이라고도 한다. 화로에 향을 피우고, 마음을 모아 부처님께 향공양을 하는 곳으로, 정결하고 엄정한 성역으로 인식된다. 절 전각에는 주지 스님이 거쳐 하며, 불사를 주관한다.

경주 남산 옥룡암 심우도.

또 대웅전 외벽에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심우도는 잃어버린 소(牛)를 찾아가는 여정을 10단계로 나누어 그린 선화(禪畵)인데, 불심을 찾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산속으로 소를 찾아 나선 동자가 소를 찾아 피리를 불며 돌아오는 노정이며, 나중에는 소도 없어지고, 자기도 잊어버린 허허로운 경지가 되면서 바랑 메고, 지팡이 짚고 중생들 속으로 떠나가는 모습,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보살의 기본수행 목적)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불자가 불심을 찾아가는 행로만이 아니라 삶의 기본을 찾아 헤매는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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