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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새경북포럼 구미지역 위원·정치학 박사
1970년대 말 학교 풍경을 다룬 한국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학교에 갇힌 십 대들의 일상과 일탈을 사실적으로 그려, 흥행에 성공한 액션영화이다.

당시 청소년들의 성장기와 학교폭력의 실상을 보여주는 추억 속의 영화로 기억하지만, 그때와 비교해 더 잔혹해진 요즘의 학교 내 폭력소식에 학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하지 않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사건으로 정부가 소년법 개정을 포함한 대책 마련 여론조사에 부산하다.

도저히 10대 청소년들의 범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수법은, 여론조사 90%가 소년법 개정과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 모두가 자식을 둔 부모이며, 언제든 학교폭력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사회발전에 따라 조숙해진 청소년들의 감추어진 학교폭력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학부모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로, 소년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문제점과 근본원인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나친 경쟁으로 학습에 내몰리는 청소년들의 최고의 목표는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학교는 국어와 영어. 그리고 수학을 통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획일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을 막론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러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학교폭력은 지나친 경쟁적 학습에서, 윤리적 가치관 부족이 만든 당연한 결과이다.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이며 자산이다. 바른 성장과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환경은 오직 학교에서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부족과 무관심이 오늘과 같은 학교폭력은 만들었고, 기성세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부는 사회생활을 위한 선 학습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경쟁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쟁보다도 함께 사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올바른 가치관이 필요하며, 이것은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전제에서, 상생과 사회성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 이웃이며, ‘심성’과 ‘인성’과 ‘품성’ 그리고 배려와 타협을 훈련시키는 곳이 학교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재된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폭력은 질서의 파괴이며 경쟁이 만든 문화적 질병으로 때로는 전쟁의 광기를 보이기도 한다. 스포츠는 폭력을 제어하는 도구이다.

올림픽을 통해 전쟁을 평화로 유도하고, 월드컵을 통해 인간의 속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사람들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심지어 동내 축구에서 열광하는 이유는 내재된 폭력성을 스포츠를 통해 분출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진 학교폭력의 현장에서 바른 청소년으로 유도하는 방법론에 많은 것이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지금,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바른 청소년의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과 역할론에 부족함은 없었는지, 제도적, 정책적 울타리를 되돌아보고 점검하여야 한다. 스포츠가 인간에 내재된 폭력을 제어하듯이, 이제는 학교폭력을 제어하는 방법을 가정과 학교, 온 동네가 발 벗고 찾아 나서야 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싸움의 연속이며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절박감이 세습되어, 우리 자녀들을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희생자로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윤리적 가치관 재정립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죄의식과 도덕적 반성을 가져야 하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생의 의미와 인간 가치의 깊이를 성찰할 때, 학교폭력은 추방될 수 있으며 우리 자녀들의 밝은 미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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