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_대구교대교수2014.jpg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인생의 1/3은 잠입니다. 그리고 잠의 주인은 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꿈 이야기가 많이 전합니다. 동서양의 꿈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꿈은 개꿈과 용꿈으로 나뉩니다. 개꿈은 보통 현실의 반영일 때가 많습니다. 결핍에 대한 보상, 불만의 표출, 불안의 대상화, 욕구의 대리충족 등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용꿈은 좀 다릅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되지만 그것이 집단의 문제로 보편화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용꿈은 예언적인 기능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따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용꿈 이야기로 신라 때의 문희 이야기가 있습니다. 문희는 김유신의 동생으로 나중에 김춘추의 아내가 되는 사람인데, 언니 보희의 꿈(오줌으로 세상을 잠기게 하는 꿈)을 사서 스스로는 왕비가 되고 나라는 삼국통일을 이루게 하는, 용꿈의 주인공입니다. 김춘추와 김유신, 자신과 가장 가까운 두 남자가 자신을 매개로 절장보단(絶長補短 : 장점으로 단점을 보충함)의 혈맹이 되도록 만든 숨어있는 삼국통일의 주역이 바로 문희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러한 결단과 의지를 뒷받침(사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오줌꿈 사기’였습니다. 그런 꿈 이야기의 전개를 눈여겨보면서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꿈을 가진 자들, 혹은 꿈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패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희의 꿈 이야기도, 넓게 보면, 용꿈(삼국통일의 염원)에 대한 신라인들의 강력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통일을 하고 싶었고, 우리가 하는 게 (꿈에서처럼 하늘이 보증한) 당연한 일이었다는 자신감 넘치는 진술이었던 것입니다. 신화적인 내용을 빌려서 역사적 당위를 강조하는 수준 높은 역사적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문희의 오줌꿈 이야기는 내용에서는 용꿈이지만 표현에서는 개꿈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마 대중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 수위를 순화시킨 것 같습니다. 실제는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꿈의 본질입니다. 꿈의 정서적 구성요소는 꿈꾸는 이의 감정에 혼란을 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왜 보희는 동생에게 (그 좋은) 꿈을 팔았을까?”라고 의문을 표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꿈 자체는 항상 꿈꾸는 이에게 낯설고 혼란스러운 존재입니다. 정서적으로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요. 꿈 주체가 손쉬운 연상작용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작 꿈꾼 사람에게는 꿈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꿈의 해석자였던 문희에게는 그런 정서적 방해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용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 꿈을 삽니다. 또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판세가 기울어서 동생에게 김춘추의 아내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는 오줌꿈이라는 개꿈을 꿉니다. ‘결핍에 대한 보상, 불만의 표출, 불안의 대상화’가 꿈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지요. 어차피 언니에게는 개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 꿈을 사서 용꿈으로 만듭니다. 언니한테 꿈을 샀다는 명분을 세워서 언니도 위로하고 대중들의 호응도 이끌어냅니다. 그렇게 집단에게 필요한 용꿈을 만듭니다.

심층심리학자 칼 융에 따르면, 꿈을 잘 이해하려면 신화나, 문학, 종교적 상징 등에 포함된 집단 무의식의 이미지들을 잘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요소들을 ‘확충의 방법(the method of amplification)’을 써서 잘 이어 붙여야 용꿈이 됩니다. 개인에게나 집단에게나 유효한 것들로 확충해서 그것의 신비한 기능을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게 융의 주장입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국면입니다. 지금이 누군가의 ‘꿈 이야기’가 절실한 때가 아닐까요?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