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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우울은 매우 흔한 증상이다. 그러나 우울하다고 해서 다 병으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 우울을 주로 나타내는 병을 우리는 ‘우울장애’라고 한다. 그런데 이 우울장애는 생각만큼 그렇게 흔한 병은 아니다. 우울은 증상이고 우울장애는 병이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기분이 저하되고 우울한 느낌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하게 많다. 흥미나 즐거움이 적어지는 것도 우울 증상이다. 죄책감으로 힘들어 하는 것도, 지나치게 후회되고 내 탓인 것 같은 기분도 우울증상이다. 게다가 피로감이나 의욕 없는 상태도, 불면증이나 그 반대인 수면 과다 현상도 우울증상으로 볼 수 있다. 식욕 또한 마찬가지다. 식욕의 저하는 당연히 우울증상이지만 식욕 과다도 우울증상으로 본다. 체중이 감소하는 것을 우울증상으로 보지만 반대로 체중이 증가하는 것도 우울증상이다. 집중력의 저하와 심지어는 치매처럼 심한 건망증이나 기억의 장애까지 우울증상으로 판단한다. 그중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아마 자살 생각 같은 중증의 우울 상태일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증상들을 다 우울증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나도 우울증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울장애는 단지 이런 증상들 한두 가지 있다고 해서 진단하는 병은 아니다. 현재 우울장애를 진단하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6가지이다. ‘주요 우울장애, 지속적 우울장애, 파괴적 기분 조절장애, 월경 전 기분 불쾌장애, 물질이나 질병에 의한 우울장애,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한 우울장애’ 들이 그들이다. 이들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각각 그 기준들이 있다. 우선 ‘주요 우울장애’라 진단하려고 해도, 하루의 대부분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을 포함하여 적어도 다음 중 다섯 개 이상의 우울증상이 있어야 하며 2주 이상의 기간 동안 힘들어야 한다. 거의 모든 활동에서 흥미나 즐거움의 뚜렷한 감소. 의미 있는 체중의 감소나 증가 또는 거의 매일 식욕의 감퇴나 증가, 거의 매일 나타나는 불면이나 수면 과다 그리고 초조감이나 지체. 거의 매일 나타나는 피로나 활력 저하, 거의 매일 느끼는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을 느낌. 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이 거의 매일 힘들고,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자살 시도나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증상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적응에 큰 어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제를 나타내어야 진단할 수 있다. 단지 우울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섣불리 우울장애로 진단을 붙이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울한 기분이 다 나쁜 것은 분명히 아니다. 때로는 정서를 살찌우는 것에 우울한 기분도 필요하다. 우울한 기분은 사색하게 하고 통찰하게 하고 깊은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큰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으로 시작된 자기 내면의 탐색이 그 후 우울한 기분을 극복해내고 창조적인 힘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바로 건강한 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병적인 우울은 이런 능력 없이 자기 파괴의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그것이 큰 차이다. 건강한 우울은 정서 발전에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단지 우울한 기분을 느낀다고 해서 다 우울장애는 아니다. 때로는 우울한 기분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이 가을, 한번은 우울한 기분으로 사색의 산책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곽호순병원 원장
서선미 기자 meeyan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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