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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성일 행정사회부 부국장
가을이 추위에 떨고 있다.

만추와 겨울의 길목에서 나무들은 형형색색의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가지마다 저마다의 작품을 전시하며 즐거웠던 순간들을 호명(呼名)한다. 생(生)의 절정인 나뭇잎의 고운 물 들임은 봄과 여름을 지나오면서 매 순간들을 즐거움으로 맞았기에 가능하다. 찰나로 사라져 가는 시간을 행복으로 기억했기에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큰 나뭇잎은 자기 자리가 왼쪽과 오른쪽 어느 방향이 있든 불평을 하지 않는다. 낮 동안 햇볕이 어느 쪽에 많이 비춘다는 억지도 없다. 해가 떠올라 석양이 될 때까지 잎마다 골고루 비추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약이 있을 뿐 온종일 비치는 빛의 양은 거의 같다. 그래서 자기의 위치를 바꿔 달라거나 다른 쪽 잎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본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나를 있게 해 준 뿌리에 늘 감사하고 있다. 뿌리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고마움을 늘 잊지 않는다.

비와 바람에 견디게 해주는 것도, 햇살에 잎사귀를 반짝일 수 있는 것도 뿌리가 땅속에서 버티고 영양분을 찾아 공급해 주기 때문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뿌리의 존재를 망각하고 저 스스로 존재하는 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햇볕이 골고루 비추듯 인간의 혜택도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당장(當場)의 불이익을 참지 못한다. 찰나의 불이익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극단의 이익추구에 목숨을 건다.

나를 있게 한 뿌리가 나를 보호하고 성장케 한다는 사실을 잊었기에 백척간두의 불안에 떨고 있다. 그래서 찰나의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인내의 시간을 상실했다.

존재의 근원을 잊었다. 스스로 존재하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명예와 부의 원천을 깨닫지 못한다.

나무가 뿌리의 영양 공급이 없으면 한순간도 생존이 불가능 하듯이 정치인들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뿌리는 비록 보이지 않지만 쉴새 없이 움직인다. 국민도 국가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는 한 나무의 두 생각이다.

다 같이 ‘국민’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같은 뿌리라는 생각을 망각했다.

심지어 뿌리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뿌리는 근본이다. 근본이 같다는 것을 아는 인간들도 생각이 다름을 인정치 못하고 뿌리에게 두 개로 나눠 이별하라고 요구하고 협박한다.

그런 탓으로 든든한 뿌리였던 국민이 두 갈래로 갈라져 세력 다툼을 하고 있다.

나무의 뿌리가 갈라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우리끼리 갈라져 세력이 약해지면 이웃 큰 나무인 주변 국가에 점령당하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이젠 나뭇잎인 정치세력들이 다시는 뿌리인 국민을 두 방향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다시 든든한 뿌리로 우뚝 솟아 찬란한 태양 아래 두 팔 벌려 햇빛을 듬뿍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하는 큰 나무로 성장해야 한다.
곽성일 행정사회부 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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