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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1993년 김영삼(YS ) 전 대통령이 ‘문민독재’라며 반발하는 하나회 맴버 군부와 5·6공 시절의 기득권층을 향해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며 개혁작업을 밀어붙였다. 당시 YS는 ‘신한국 창조’를 국정 지표로 내걸고 사회 각계를 대상으로 ‘한국병 치유’에 나섰다. YS의 신한국 창조를 위한 한국병 치유가 대한민국 적폐청산의 시효라고 할 수가 있다. 이때 YS의 절대적 정치동지였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부정축재설에 휩싸이면서 그 유명한 ‘토사구팽’이라는 중국 고사를 읊고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YS는 인적청산보다는 시스템을 바꾸면서 그 틀 안에서 시대에 맞지 않은 인사들을 도태시켰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시스템의 변화보다는 인적청산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적폐청산에 앞서 개혁의 청사진부터 먼저 제시했어야 했다. 동시에 시스템의 정비가 병행되는 가운데 인적청산에 나서야 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전 정권, 전전 정권의 핵심인사들을 상대로 인적청산부터 벌이고 있다.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인적청산은 전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최근에 구속된 김관진 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안보실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 때는 국방장관을, 노무현 정부때는 함참의장을 지낸 대표적인 무인이다. 김 전 실장이 국방장관 재임 시 북한 정권이 가장 무서워했던 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3일 중국 국영 CCTV가 포승줄에 묶인 김 전 실장의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사드 배치의 주역이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그들로서는 한국 검찰이 어떤 이유에서건 김 전 실장을 인신구속까지 했으니까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김 전 실장의 혐의는 국방장관 재임 때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활동에 연루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차례로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원장이 매달 5천만 원에서 1억 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돼 금명간 교도소에 갈 상황이다. 다른 혐의로 수감 중인 이명박 정부 때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까지 포함하면 국정원장이 4명에 이른다. 이밖에 일명 ‘꼿꼿 장수’로 유명한 김장수 전 안전실장도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보고 시점의 조작 의혹으로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머잖아 수사를 받을 처지다.

이들은 지난 9년 동안 대한민국 안보를 최일선에서 책임졌던 인물들이다. 이들이 모조리 감옥에 가는 것은 비상시국의 혁명 상황이 아니라면 감히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이들의 혐의가 혁명 상황에 버금갈 만큼 중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로 이들을 모두 구속한다면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현행법의 법 집행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도 볼 수가 있다. 대한민국의 정보수장을 지낸 이들에게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볼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4당 대표 초청회동에서 “적폐청산은 개인에 대한 책임 처벌이 아니다. 불공정 특권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서는 아직까지 시스템 정비보다는 인적청산이 앞서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로부터 적폐청산에 대한 절대적 공감을 얻으려면 역대 정권에서 보여 준 불공정한 시스템을 하루빨리 고쳐 나가는 개혁의 청사진을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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