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섭 삼국유사사업본부장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례왕은 어진 임금이었다. 제2대 남해왕이 승하하였으므로 장남으로서 당연히 왕위를 계승하여야 하지만, 매부(妹夫)인 석탈해가 출중하므로 왕위를 양보하려 하였다. 탈해도 사양하며 덕이 있는 자는 치아가 많다면서 치아의 수로 정하자 하여 시험해보니, 노례왕의 치아가 더 많으므로 이에 즉위하였다. 비로소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는데, 차사(嗟辭)와 사뇌격(詞腦格)이 있었다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유리왕(儒理王=노례왕) 5년(28년) 겨울 11월에 임금이 나라 안을 순행(巡行)하다가, 주리고 얼어 거의 죽게 된 한 노파를 보고 “내가 보잘것없는 몸으로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여 늙은이와 어린이를 이 지경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잘못이다.” 하고, 옷을 벗어 그 노파를 덮어 주고 음식을 주었다. 곧바로 관원에게 명령을 내려서, 지역마다 홀아비·홀어미·고아·독거노인과 늙고 병들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찾아가서 위문하고 물자를 공급해 주게 하였다. 이에 이웃 나라의 백성으로 그 소문을 듣고 신라로 들어온 자들이 많았다. 이해에 백성들이 즐겁고 편안하여, 비로소 ‘도솔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가악(歌樂)의 시초라 한다. 그리고 경덕왕 19년(760년) 4월 초하룻날 두 해가 함께 나타나서 10여 일간 없어지지 않자 월명사(月明師)를 청하여 도솔가를 지어 노래하니, 괴변이 사라졌다는 유래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여기서 장황히 고대의 두 역사서를 인용한 것은 역사는 비록 과거의 기록이지만, 항상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훌륭한 틀이 되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국가나 공동체의 재난이 일어나면, 뜻을 모아 집단적으로 노래하는 풍속이 있었다. 도솔가뿐만 아니라, 진평왕 시절 왜구가 침범하고 하늘에 혜성이 나타났을 때 소리 높여 불렀던 혜성가, 용왕에게 잡혀간 수로부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 큰 소리를 불렀다는 해가(海歌) 등이 있다. 우리는 이 기록들을 통해, 신라는 현대 수준에 준하는 복지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민중과 노래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일상생활에 활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라인들은 구휼(救恤)과 협동의 정신, 시(詩)와 노래라는 문화의 가치를 잘 알았던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재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민간과 정부의 구호활동도 활발하다. 마치 신라 시대에 향가(鄕歌)를 부르며 재난극복을 위해 합심하는 광경이 떠오른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재난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포항지진의 피해자는 포항시민이지만, 가장 큰 책임자는 정부다. 정부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事前) 대비와 사후(事後)의 피해복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다. 정부는 지진뿐만 아니라, 원자력·선박·교량이나 인구밀집지구에서의 화재와 풍수해 등 각종 재난과 전쟁의 위험에서 국민을 지켜야 한다. 종합적이면서 구체적인 재난대책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마침 김정재 국회의원은 ‘지진재해로 인한 재난복구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신속하게 발의했다. 보다 충분한 재해의 복구와 지원을 가능하게 할 시의적절한 법안이다. 압도적인 가결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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