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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강릉행 KTX를 탈 기회가 있었다. 2주 전이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평창역 근처에 있는 한 역에 내렸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역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 KTX 타고 가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나보다 30분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있어 그 시간에 맞추어 마중을 나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역에 내린 다음 뒤쫓아 오는 일행을 승강장에서 기다릴까 생각하면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쪽저쪽 산세도 살피고 황량한 논밭도 살피면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바로 그때 역무원이 다가오더니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왜 내려가라고 하지?” 하고 생각했지만 나도 몰래 ‘네, 네’ 한 뒤 두어 계단 내려가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보았다. 왜 내려가야 하는지. 기다려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역무원은 이 자리에 있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우선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아서 그렇단다. KTX가 시속 250Km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열차가 지나갈 때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열차 가까운 곳에 돌멩이나 쇠붙이처럼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면 공중으로 튀어 올라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상상도 못 한 이야기다. 고속의 KTX가 역사에 들어오는 모습을 찍기 위해 철로 방향으로 고개를 내미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분과 함께 내려온 뒤 그분은 다른 곳으로 가고 나는 대합실로 갔다. 한 20분 뒤에 보니까 쉬는 시간이 되었는지 그분도 대합실에 앉아 계셨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들려줄 수 없는지 물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운을 뗀다. 며칠 전에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자녀로 보이는 어린이와 함께 올라가려고 해서 지금 올라가면 위험하니까 기다렸다가 열차가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올라가라고 했더니 막 화를 내더란다. 반대쪽에서 오는 고속열차와 다른 열차 때문에 위험할 수 있어 그런다고 했더니 안전해도 내 문제고 안전하지 않아도 내 문제라고 말하면서 불쾌한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 자신은 손님의 안전을 생각해서 한 말인데 왜 나의 자유를 제약하느냐고 따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왜 저렇게 반응을 해야 하지?” 싶었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이고 답답하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아이들 두 명과 함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올라갔는데 바로 뒤따라 올라가 보았더니 빨리 뛰어 올라간 아이들이 철도 레일 위에 들어가 있더라는 것. 화들짝 놀라서 당장 올라오라고 했는데 엄마로 보이는 사람은 아이들에게 살짝 눈만 흘기고 말더란다. 이때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안전에 주의를 주고 따끔하게 말을 해서 다시는 못 들어가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이해가 안 갔다고 한다.

말을 하다 보니까 두 사례가 모두 여성인데 남자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안전을 대하는 입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에 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법률이나 시스템이 미비해서 안전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모든 게 법률과 제도, 시스템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생활 속에서 안전에 관심 갖고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전도 생각하면서 ‘서로 참견하고 서로 호응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철도역사 같은 공공기관에서 안전을 위해 주의를 요청하거나 권유를 하면 간섭이라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 아닐까.

안전은 불편할 수 있고 자유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안전은 관성과 관행을 깨는 것이다. 나와 우리가 모두가 안전해지려면 안전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걸 공유하고 안전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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