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기상의 봄은 입춘(立春)에서 입하(立夏) 전까지이기 때문에 혹한이라지만 봄이 시작됐다. 대략 음력 1월에서 3월까지가 봄인 셈이다. 봄은 첫 번째 계절일 뿐 아니라 한해의 시작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는 대문 앞에다 삐딱하게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방을 써 붙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 계절을 맞는다.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워야 한다(一年之計 在於春)”는 말이 오래전부터 내려온다.

옛날에 이런 멋진 풍습도 있었다. 입춘 날 궁궐에서는 글 잘 짓는 승문원 제술관에게 하례시를 짓게 했다. 그 가운데 빼어난 시를 뽑아 연잎이나 연꽃 무늬를 그린 종이에 옮겨 써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에 붙였다고 한다. 이것이 입춘첩(立春帖)의 근원이다. 입춘첩은 무사 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주로 담았다. 농가에서는 이날 보리 뿌리를 쏙 뽑아 보아서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을 때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해 풍작을 이룬다고 믿었다.

봄은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덧없는 일, 허무한 일을 봄에 빗댄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나 ‘봄꽃도 한 때’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허무의 감정은 다른 계절에 비해 봄이 매우 짧게 느껴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 고려 시대 이규보는 ‘춘망부(春望賦)’에서 “오직 봄만은 때나 곳에 따라 화창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저절로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고 마음의 속절없음을 읊었다.

흔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지만 우리 젊은이들에게 봄이 봄 같지 않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21차례 청년실업 대책을 내놓고, 최근 5년간 1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청년실업률이 떨어지기는커녕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체감 실업률은 22.7%나 된다.

어느 조사에서는 20~30대 청년들의 삶의 행복지수가 다른 연령대보다 가장 낮다는 우울한 결과도 있어서 회색빛 청춘을 두고 봄 얘기 하기도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청년들이 뜻대로 취직할 수 있는 ‘여의길상(如意吉祥)의 봄이 됐으면 좋으련만….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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