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대 변호사_1.jpg
▲ 윤정대 변호사
강간상해 범죄사건의 변호인으로 검사의 피의자 조사에 입회했다. 피의자는 강간상해 사건으로 영장이 발부돼 구속된 상태였다. 담당 검사는 딱딱하게 보이는 여검사였다.

피의자는 강간상해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술에 취해 일부만 기억을 했다. 모텔에서 성관계를 합의하에 하려고 하다가 성관계를 하기도 전에 서로 다퉈 그만두었을 뿐 강간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검사가 직접 피의자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조사 태도가 단호했다. 이십 대 후반인 피의자는 검사실에서 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으면서 무척 위축돼 있었다.

검사가 가지고 있는 강간상해의 증거들은 넘쳤다. 피해자는 온몸에 멍든 사진과 진단서를 제출했었다. 피의자가 범행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검사는 내가 겪은 여느 검사들과는 달리 신중했다. 피의자가 기억을 되살려 진술하기를 원했었다.

계속된 조사 끝에 검사가 언성을 높이자 피의자는 고개를 떨구면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겠다고 했다. 나는 황급히 나서서 검사에게 “피의자가 사실을 인정해서 자백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조사가 힘들어서 자백하겠다는 것인지 피의자와 이야기를 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검사는 변호인과 피의자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까지 피해 주었다.

피의자는 “강간한 사실이 없지만 조사받기가 너무 힘들다, 빨리 끝내고 싶다”며 울먹거렸다. 구속 피의자는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양팔을 포승줄로 허리에 묶은 상태에서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장시간 조사과정에서도 동일한 상태에 놓인다.

검사는 변호인인 나의 우려와는 달리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한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변호인의 요청대로 당시 모텔에 근무한 직원과 통화를 시도했다. 검사는 이미 자신도 모텔에 연락을 하였으나 목격한 모텔 직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모텔 직원의 신분을 검사에게 알려주었고 다행히 검사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검사는 모텔 직원에게 피해자가 모텔로 들어가고 나올 때의 상태를 자세하게 묻고 이를 조서에 모두 기재했다.

그 후 검사는 피해자로부터 휴대폰을 제출받아 지워진 카톡 내용을 어렵게 복원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고의적으로 몸에 상처까지 내서 진단서를 발급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피해자는 무고로 기소됐고 피의자는 구속된 지 한 달 만에 석방됐다. 진실을 밝히는 검사의 노력으로 피의자는 성범죄자라는 누명을 벗은 것이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사실 직원들은 내게 검사가 휴일까지 반납하고 청사에 나와 수사했다고 전해줬다.

그 검사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과정에서 검찰 내·외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고 밝힌 안미현 검사이다.

안 검사는 지난해 2월 춘천지검 소속으로 강원랜드 직원 채용 비리사건을 인계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인 지난해 4월경 최종원 당시 춘천지검장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을 만나고 온 후 안 검사에게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권 의원, 모 고검장, 염동렬 국회의원 등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들을 비롯하여 이들의 이름이 나오는 부분들을 전부 빼달라는 외압도 있었다고 밝혔다.

안 검사는 검찰 내·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폭로하는 이유는 검사로서 법에 따라 방해받지 않고 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진실에 위한 안 검사의 노력을 기억한다. 그리고 부당한 압력에 맞서는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응원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