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 오는 붉은,


단발머리 혜지가 그림을 그린다

가지에 바람을 매달고 이파리를 올려붙여서

높은 하늘까지 나무를 키운다

생각으로 나무에 꽃이 피는 나라


단풍이냐? 내가 묻고

혜지가 대답한다 몰라요 혜지는

가을을 모르는 여덟 살 여자아이

기억은 털이 없는 이상한 짐승

나무는 빨간색 외투로 비밀을 입었다


구름 위로 다 자라버린 나무

어디까지 가는 건데? 다시 묻고

혜지는 등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하늘에도 바람이 불어요?

잘근잘근 손톱을 씹는다, 뱉는다


(후략)


감상) 겨울에는 어떤 바람이 부는 건지 몰랐으면 좋겠다. 봄이라는 계절이 왜 슬픈지 몰랐으면 좋겠고 새싹은 그냥 새싹일 뿐이라고 해맑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봄이 오기 전인데 봄 때문에 먼저 아프다. 그 햇살이 어떤 계절을 스쳐갔는지 알기 때문이다. 새싹들이 얼마나 아프게 태어나는 건지 아주 조금 알기 때문이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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