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펜스, 北 김영남 의도적 회피…‘북미대화 신호’ 해석 차단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뒤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고리로 북·미 사이에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가 일단 벽에 부딪힌 형국이다.

북한이 ‘최고위급’ 인사들을 내려보내며 문 대통령의 ‘평화 드라이브’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인 미국이 공개적으로 ‘비토’를 놓은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의 압박공조를 풀고 북미대화에 응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평창 외교무대에 분명히 던졌다는 평가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9일 문재인 대통령 주최 사전 리셉션에 사실상 ‘불참’한 것은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거부감을 명확히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펜스 부통령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면서까지 북한의 헌법상 국가수반인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조우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분석이다. 리셉션에 뒤늦게 참석하고 행사장에서 착석도 안하고 일찍 자리를 뜬 것은 김 상임위원장과 마주치거나 악수를 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얘기가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미대화의 신호탄으로 해석될만한 여지를 일절 차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펜스 부통령은 당초 방한 일정을 사전협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북한 측 인사와 조우하지 않도록 ‘동선’에 각별히 신경써달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에게 “(펜스 부통령의 리셉션 불참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일정협의 과정에서부터 불참의사를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최대한의 압박’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지만, 대북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훈수’도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한반도 평화외교 흐름 속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아베 총리는 지난 6∼8일 방일한 펜스 부통령을 상대로 대북압박 지속과 한미일 공조 강화를 강조했고, 이는 방한과정에서 두 정상의 ‘공동보조’로 나타났다는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아베 총리와 펜스 부통령은 이날 오후 함께 사전 리셉션장에 ‘지각’했고, 이후 곧바로 리셉션장에 입장하지 않은 채 공동 기념촬영을 했다.

일본과 보조를 같이한 미국의 제동으로 평창발(發) 남북 해빙무드를 북미대화의 흐름으로 살려나가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임이 확인됐다.

북미간 군사적 긴장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한반도 정세흐름을 대화국면으로 전환시켜보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탄력을 받기 어려웠다는 관측이다. 특히 미국과의 공조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일정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10일로 예정된 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견·오찬이다. 특히 북한의 ‘실세’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반도 정세를 흔들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접견에서 북한이 핵동결, 나아가 핵포기 용의를 이끌어낼 지 여부다. 만일 북한이 핵동결 의사를 밝힌다면 이를 ‘입구’로 삼아 새로운 대화의 모멘텀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확고한 입장을 확인한 지금 공은 북한에 넘어가있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이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할 사안이라고 여기는 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의제로 삼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진정성’을 담아 비핵화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면 현재 국제적 고립국면에 처한 북한의 태도변화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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