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함께 커피 전래 이야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독일 여성 손탁(孫鐸·A Sontag)이다. 손탁은 고종을 커피 마니아로 만들었다. 주한일본대사관 기록에는 “폐하께서는 때로 양식을 즐겨 찾으시는데 항상 커피를 먼저 찾으시는 것이 상례”라 했다. 손탁이 고종에게 커피를 권한 것은 황제 재위 33년(1896) 온건 개화파 김홍집 등이 일본과 손잡고 추진하던 갑오개혁에 반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때라고 전한다. 고종은 훗날 궁으로 돌아와 손탁이 살던 서소문 정동에 양옥 건물을 지어준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양저(孫鐸孃邸)로 불린 손탁호텔이다. 이 호텔 1층에 레스토랑 겸 커피숍도 처음 생겨 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30여 년 만에 한국은 ‘커피 소비 왕국’이 됐다.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커피는 잔수로 계산하면 265억 잔, 한국 인구 5177만 명이 1인당 연간 512잔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관세청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 커피 시장 규모가 10조 원을 훌쩍 넘어 11조7397억5000만 원이나 된다.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 신장은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다. 유길준이 ‘서양 사람들이 커피를 숭늉 마시듯 한다’고 했는데 이제 우리 국민이 커피를 그야말로 숭늉 마시듯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