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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대 변호사
“아빠, 나, 나이 먹기 싫어.”

“왜? 나이 드는 게 어때서?”

딸이 뜬금없이 내게 한마디 던진다. 대학생인 첫째 딸은 설을 쉬기 위해 내려왔다. 아내는 보고 싶어 하던 딸이 내려오자 여기저기 데려 다니면서 무척 좋아한다. 딸은 아내의 기분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맞춰준다. 딸은 내게도 종종 말을 건다. 딸과의 대화는 짧고 단순하고 가볍지만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

“아빠, 늙는 것이 상상이 안 돼”

“늙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건데. 늙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딸과 같은 나이에는 인생이라는 것이 40대까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40대에 인생이라는 산의 정상을 오를 것으로 믿었다. 50대나 60대는 연장선에 불과했다.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하려 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또 세상이 변하면서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25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82세에는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삶은 20대에도 존재하지만 80대에도 존재한다.

“아빠는 나이 먹는 게 좋아?”

“나쁠 것 없지. 나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그리고 과거의 시간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보냈다면 대체로 가족이 있고 재산은 늘고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다. 경험의 주관성에서 벗어나 삶의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감정의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듯이 현실에는 늘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이 들면 오히려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가족이나 인간관계에서 멀어지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탈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비해 희망은 보이지 않고 좌절은 깊어질 수도 있다.

“아빠는 언제가 인생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아?”

“지금이 제일 좋지. 그리고 70대나 80대가 황금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에이~ 아빠, 정말이야?”

인생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화려한 휘장 뒤에 쓸쓸함이 존재할 수도 있고 정상으로 보이는 곳이 추락하는 허공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삶은 때로는 산을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먼 길을 걷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는 먹었는데 돈 없고 병들면 힘들지 않아?”

“나이 들면 돈 없고 병든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하잖아?”

“누구에게나 경제적으로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 물론 노년의 빈곤이나 질병은 회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노년의 더 큰 문제는 경제력이 아니라 정신력이 아닐까. 많은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재산을 움켜쥐고 죽는 것을 보면 말이야”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안 쓰는 것 아니야?”

“글쎄, 그것보다는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거액의 재산을 남겨둔 채 죽는 경우를 많이 봤어. 돈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한 건데 결과는 자신이 돈을 지킨 거지”

“아빠,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거야?”

“글쎄, 그걸 알기 위해 오랫동안 나이 먹고 싶은걸.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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