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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기원전 49년 로마 제국 시절 병사들의 종전 거부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최고의 전략가이자 실력자인 카이사르가 이끄는 정예 군단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부하들이 종군을 보이콧하는 파업을 겪었다니 황당하다.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한 권력자의 휘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군인은 하층민 집단이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시민이다. 그들은 병역을 당당한 책무로 여겼고, 당연히 노예는 부담할 의무가 없었다. 로마는 오랫동안 징병제를 시행하다가 지원제로 바꾼 나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카이사르 편에 의하면, 그는 갈리아 전쟁을 함께한 심복 부대인 제9군단과 제10군단이 저지른 두 차례 농성을 맞았다. 군병들은 즉각 제대를 내세운 급여 인상이 진짜 의도. 카이사르는 논리적인 설득 연설과 엄정한 법 집행 의지로 저항을 잠재우는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요즘 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마편’이라고 한다. ‘마음 편지’의 줄임말. 병에만 있는 제도로 애로나 개선 사항을 무기명으로 기재하여 선진 병영을 지향코자 하는 바람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내부 고발이랄까. 우리 세대가 복무할 때는 ‘소원 수리’라고 칭했으나 한층 순화된 어휘로 달라졌다.

새해 들머리 부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한 조카의 안부를 보면서, 악의 없는 ‘진솔한 편지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일상을 나지막이 얘기하듯 틈틈이 쓴 서신이라 가식이 없다. 괴로움을 과장하거나 고해바치는 내용은 더더욱 아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굴러갈 일과라 남다른 효심과 기록의 열정 없이는 쉽지 않은 글쓰기.

녀석은 입영한 지 보름 만에 소식이 왔었다. 옷가지 소포에 4통의 글월을 넣었다. 아마도 정상적인 경로라면 배달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함인지 “오늘은 1월 7일이고 한 주 혹은 이삼 주가 걸려 도착할 수 있다”고 말머릴 풀었다. 나눠주는 편지지가 제한되고, 어쩌다 편지 쓰는 시간이 주어질 뿐 아니라 2장이 넘으면 퇴짜를 맞는 여건에도, 스무 통이 넘는 육필 서간을 보냈다.

얼차려는 수시로 받지만 견딜 만하다고. 휴일 종교 활동 땐 초코파이 얻어먹고, 짧은 치마 입은 가수를 보면서 군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았다고. 여대생 누나들 대신 뚱뚱한 아줌마가 와서 다들 왕실망도 했다고.

29살 동기한테 반말을 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소대 불침번 잘못으로 한밤중에 단체 기압을 받았다고. 가족들이 같이 가던 목욕탕보다 시설이 엄청 좋다고. 가끔은 동상 걸릴 만큼 춥다고. 식사는 전쟁이며 반찬을 적게 준다고. 살이 빠졌음에도 몸무게는 비슷하다고. 분리수거하는 날은 정신없이 바쁘다고. 손편지를 보낸 여자 친구에게 부쳐 달라며 동봉한 연애 쪽지도 들었다.

나이 많은 형이 수행하던 소대장을 맡았으나 어린 탓인지 말을 안 듣는다고. 입대를 앞둔 친구가 선배라고 불러서 이상했다고. 군대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라고. 군법 강의 교관이 웃으면서 가르쳐 행복했다고.

조카의 서신엔 “왠지 부대는 체계적이지 못한 거 같아요” 하는 교육생의 소회가 이따금 나온다. 신세대 사병이 접하는 군문의 내면엔 다양한 시각이 투영될 것이다. 더불어 뭔가 보완이 필요한 자화상도 생기리라 여긴다. 담장 너머 폐쇄된 특수 조직이 아닌 합리적 군영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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