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맨질한 마당에
그림자를 널어놓는다

빛바랜 칫솔을 물고
노파는 주름진 입술을 오물거린다

거품을 문 입술은 지느러미보다 유연하다
칫솔이 움직일 때마다 헐렁한 소맷자락의 꽃들이 간들거린다

노파와 칫솔이 만드는 각도에 맞춰
마당 안의 사물들이 일제히 몸을 흔든다

마른 손등에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담 밑의 꽃봉오리가 조금씩 입을 벌린다

제 키를 훌쩍 넘는 그림자를 발끝에 달고
아이들이 달려나간다

양은대야 가득 경쾌하게
구름이 흘러간다

오래전 지붕 위로 던진 치아들이
뭉게뭉게 떠 간다





감상) 우리 집 칫솔 꽂이는 언제나 빽빽했다. 오빠들이 올 때마다 한 번 쓰고는 두고 가기 때문이었다. 그냥 버리자 해도 아버지는 다음에 오면 오빠들이 쓸 거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칫솔은 계속 늘어났고 결국 당신의 칫솔이 다 닳으면 그 중 하나를 뽑아 쓰고는 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새 칫솔을 쓰지 못하셨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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