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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엇을 경계해야 할 것인가

이종욱 정치경제부장 ljw714@kyongbuk.com 등록일 2018년03월04일 16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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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욱 정치경제부장
1960년대 말인지 1970년대 초인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TV가 처음 나온 뒤 ‘여로’라는 드라마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매일 저녁을 먹은 뒤 TV가 있는 집은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사랑방을 이뤘었던 기억이 있다.

필자 역시 방앗간 집 TV 앞에서 그 드라마를 봤었고, 어느 날 그 드라마에서 한·일합병 장면이 방영됐다.

초등 1학년 때쯤이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그 장면이 방영될 때 TV를 보던 모두가 만세를 불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역사를 알게 된 후 그 당시의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늘 부끄러움이 함께 했고, 역사의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후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인으로 나와서도 지금까지 행여 서점을 찾을라치면 반드시 찾는 곳이 역사코너이고, 틈이 나는 대로 역사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 그 기억처럼 무지로 인해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요즘 또다시 중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불과 3년 전 보수정당에 의해 추진됐던 역사교과서가 잘못됐다며 새로 만들기 위해 내놓은 시안이 이번에는 너무 진보적이란다.

역사에 대한 시각이 보는 이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고, 그 서로 다름이 발전의 기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속한 역사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그것이 곧 역사 왜곡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나는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미명아래 자신이 중심에 서 있었던 4·19혁명에 대한 역사를 재평가하면서부터 한국 현대사 왜곡의 단초가 됐다고 본다.

이후 정치권력들이 속해 있거나 자신과 관련된 현대사 부분까지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아전인수격 행동을 서슴지 않으면서 질곡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사관(史官)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했고, 사관은 당대의 임금이 살아있는 동안은 사초만 모았을 뿐 글로 역사를 남기지도 평가하지도 않았다.

또한 선대의 왕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내려지는 시호나 묘소에 올려지는 묘호 역시 죽은 뒤에 내려지기 때문에 당대 왕은 이를 알지도 듣지도 못하도록 해 놓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역시 살아생전에는 담덕 등 이름으로 불렸으나 사후 ‘국강상광개 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묘호가 내려짐에 따라 후대에서 광개토대왕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옛 선조들이 하늘에 비유되던 왕의 치적에 대해 논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역사 왜곡을 경계함에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엄밀히 따지면 정치권력의 역사임을 생각하면 선조들의 이 같은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런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현대사의 어느 시점부터 누군가의 잣대가 마구잡이로 휘둘러져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필자는 오늘 자신이 만든 잣대를 휘두르며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사람들을 향해 ‘선조들이 역사 앞에서 무엇을 경계했는지 가슴에 새기라’고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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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기자

    • 이종욱 기자
  • 정치·경제부장 겸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