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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때로는 여행이 인생을 바꾼다. 익숙한 일상의 질서에 갇혔다가 낯선 세계의 충격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경우이다. 오늘날 러시아 기틀을 다진 표트르 대제도 해외여행을 통해서 변혁의 결기를 일깨웠다. 그는 이복형과 함께 공동 차르에 등극했으나, 이복 누나의 섭정으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문화사절단을 꾸려 유럽 순방길에 올랐고, 이것은 러시아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 된다. 영국의 해군 운영 기법과 항해술을 배우고, 자신의 신분을 숨긴 네덜란드에서 선박 건조 기술을 익혔다. 그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나라를 적극 개혁하였다. 귀족들 수염을 강제로 자르는 파격 행보를 펼쳤다. 인재를 양성코자 해군 학교를 설치했고, 발트해 함대를 창립하면서 해상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상명하복 질서가 엄격한 군대는 독특한 병영 문화가 형성된다. 무엇보다 사용하는 언어에서 두드러진다. 수병으로 군 복무 중인 조카는 그들만의 고유 은어를 소개했다. 외래어가 뒤섞여 너무나 생소해서 놀라웠다.

식판은 츄라이, 물청소는 쇼핑, 손걸레는 웨이스, 대걸레는 스나프, 그리고 페인트 벗기는 망치는 깡깡이, 관물대는 체스트로 부른다고 한다. 근무복 상의는 셈브레이, 하의는 당가리라 칭한다니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함정에도 별명을 붙였다. 세종대왕함은 세종대마왕, 율곡이이함은 통곡이이, 을지문덕함은 을지무덤, 광개토대왕함은 광개토나와, 그리고 PCC는 피철철로 애칭을 정했다니 지하의 위인들이 섭섭하진 않을까.

올해 1월부터 사병들 봉급이 대폭 인상됐다. 이병은 167,000원, 일병은 180,400원, 상병은 199,000원, 병장은 220,000원을 받는다. 조카는 적금 10만 원을 붓고 나머진 PX와 전화비로 사용한다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군인 급여가 사회 안정의 중요한 화두였다. 도시국가 아테네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는 장병들 급료 제도를 국가 정책으로 시행했다. 월급 15드라크마 정도로 평소 수입과 비슷하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도하 이후 병사들 급료를 두 배로 올렸다. 기원전 49년 그가 가장 신뢰하던 직속 군단은 처우 개선을 내걸고 파업을 벌이기도 했었다.

상병 중고참인 조카는 해군이 좋은 이유를 말한다. 뭣보다 휴가가 많고 함정근무수당이 나온다. 청해 부대 6개월 파견이 꿈인데 쉽진 않다고. 삼군 중 가장 멋있는 복장과 배를 타는 것이 주된 임무라 몸을 마구 사용하는 훈련이 없다. 또한 자격증 취득이 활성화돼 공부가 가능하다고. 해군 유일한 제도로 ‘15분 전 5분 전’이란 게 있단다. 15분 전에 모여서 5분 전까지 출항 준비를 끝내야 한다는 수칙.

초등생 때부터 독서광이었던 녀석은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연전연승하는 이순신을 영웅으로 존경했고 해군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언젠가 울돌목이라 불리는 해남과 진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탐방한 적이 있다. 탁한 물빛의 빠른 물살과 소용돌이치는 조류가 급박한 분위기를 띄우는 곳이다. 이 충무공이 13척의 전선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

영화 ‘명량’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이야기. 바다를 포기하고 육상의 권율과 합세하라는 선조에게 최민식이 분한 충무공은 비장하게 아뢴다.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우국충정과 임전무퇴와 백절불굴. 지난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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