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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혈연에 의한 세습은 북한의 3대 세습과 남한의 재벌 세습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세습에는 성직의 세습 특히 목회직의 세습도 점차로 확산되고 있다. 귀족과 성직자라는 소수의 특수 지배계층과 농노나 노예 등 대다수 피지배계층으로 이루어진 중세사회에서 자유로운 시민계급이 주를 이루는 근대사회로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우리는 이를 전근대적인 신분사회에서 근대적인 계약사회로 이행되었다고 표현한다. 

왕을 정점으로 한 귀족과 성직자 등으로 이루어진 지배계급의 압제에 항거하여 자유와 평등, 박애를 모토로 시민들이 일으킨 대표적인 혁명이 프랑스대혁명, 영국의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등이다. 우리나라는 근대적인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까지도 양반이나 지주 등 소수 지배계층이 존재하고 있었고 국민 대다수는 농노에 가까운 소작농으로 생존의 기아선상에서 허덕였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돈 그리고 농지개혁을 거치면서 봉건적인 신분계급은 사라지고 우리나라도 비로소 근대적인 시민사회로 옮아가게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혈연이라는 출신 성분에 따라 조선시대의 양반을 대체하는 공산당 간부계급이라는 소수의 봉건적인 특수신분계층이 생겼고 그 정점이 김 씨 일가의 백두혈족에 의한 3대 세습이다. 그리고 남한에는 경제발전과 함께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토지 등 부동산을 소수의 부유층이 다수를 소유하게 되면서 부의 불평등에 의한 금수저계층이 형성되었고 그 정점이 혈연에 의한 재벌의 세습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후 모든 국민에 대한 보통교육의 의무화, 남녀평등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는 농지개혁의 실시, 신앙의 자유의 실현 등으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5 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신분에 예속된 봉건적인 사회가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국민소득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었으나 빈부의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적었던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발독재의 아픔도 있었으나 세계의 수많은 후진국 중 가장 열악했던 대한민국이 경제건설과 민주화 항쟁을 통하여 후진국 중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선진국 진입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빠른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소수의 기득권층이 부와 토지를 독점하고 혈연에 의하여 이를 대물림함으로써 신분의 고착화로 인하여 21세기에 다시 계약사회에서 신분사회로 역사가 거꾸로 진전되고 있는 듯하다.

기득권의 혈연에 의한 대물림으로 목회직의 세습은 또 다른 신분의 고착화 현상의 하나다. 신앙의 자유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란을 거치고 보릿고개를 넘어오면서 판잣집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천막교회를 세우고 오직 예수님의 복음의 전도와 사랑의 실천을 설교하며 목회의 터전을 일구어 왔으며 수많은 교인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왔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발전과 함께 교회는 양적 팽창으로 대형화되고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면서 세속화되었고 심지어 목회직이 기득권이 되면서 목회자들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자식에게 목회직을 대물림하는 목회세습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 대물림이 대형교회에서 중형교회로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헐벗고 굶주리고 검소함 속에 구도의 정신이 생기고 물질적 풍족과 기득권의 안락함 속에 음탐한 마음이 생긴다고 하였다. 목회세습이 교회의 안정과 사역을 위하여 불가피하다느니 교인 다수의 동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느니 하는 주장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사유화된 교회를 대물림시키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으며 목회자들은 기득권의 세습과 물질적인 안락함이라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희년의 율법 정신으로 돌아와 약자와 헐벗은 자의 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영적인 지도자로 거듭나야 할 때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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