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큰 몫을 한 것으로 세간에 평가됐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비자금 수사에 대해 유보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김 총장은 김대중 대통령 집권 후 정치사정 등을 통해 일정한 역할도 했다. 이 같은 DJ 도우미 역할 덕분으로 정권교체 이후에도 검찰총장 자리를 지켰다. 부인이 연루됐던 옷로비 사건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장관으로 승진까지 했다. 하지만 순풍에 돛단 듯한 그의 관운도 그기까지였다. 장관 취임 보름 만에 자신의 휘하에 있던 대검 공안부장검사의 파업 유도발언으로 장관직에서 하차했다. 결국 옷로비 사건의 문건 유출로 국가공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과 함께 구속 수감됐다.

군부독재시대에 이어 문민정부 시대에서도 검찰총장이 대통령 출신 지역이나 연고 관계를 벗어나지 못해 ‘정치검찰총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검찰총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이나 법무 장관도 검찰총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별 검사에게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전국 검사를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검찰총장 뿐이다. 그러나 역대 총장 대부분이 법에 보장된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청와대와 권력 실세들에 찍힐까 봐 스스로 몸을 낮추는 바람에 검찰수사가 정권의 입맛따라 춤을 추었다. 그 바람에 ‘검찰이 정치 시녀’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검찰 총수와 수뇌부들은 권력만을 바라보고 권력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심지어 권력이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권력의 뜻을 짐작해 그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 심재륜 전 고검장의 검찰의 권력 시녀화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검찰 자신조차 믿지 못할 정도로 권력에 대한 봐주기 눈치 수사로 검찰불신을 심화시키고, 검찰 명예에 먹칠해 왔다. 전 현직 검사들은 “검찰총장 한 사람이 하기에 따라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있고, 정의의 화신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드루킹 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 수사를 두고 ‘검경이 짜고 치는 고스톱 수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검찰이 권력 시녀 오명을 벗고, 못 벗고는 검찰총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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