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꽃이 오직 한 마리 벌만 사랑하게 된다면
다른 수많은 벌들을 뿌리치고 기다리거나
그리움의 뿌리를 뽑아 맨발로라도
한사코 찾아다니느라 향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만약에 벌이 한 송이 꽃만 사랑하게 된다면
어찌나 많은 꽃들을 다 모른 체하고 오직 한 송이에 눌러 앉거나
꽃 진 자리 봉긋한 무덤 앞에 망연자실 푹 무질러 앉아
하 많은 세월 기다리느라 날개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에서는 향기와 날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게
다 그런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감상) 1연의 ‘꽃’이 여자 쪽에서 이야기한 것이라면, 2연의 ‘벌’은 남자 쪽에서 말한 것이니 말이 자욱할 수밖에 없죠. 꽃과 벌처럼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는 게 인간인걸요. 3연에서 누구나 그런 전력이 있다는 말이 정곡(正鵠)을 찌릅니다. 지금 누군가를 마음속으로만 간절히 사랑한다면 용서해 주실 거죠. 인간사가 이것저것이 뒤섞여 엉겨 있는 착종(錯綜)에 놓여 있으니까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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