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김경룡 대구은행장 내정자 전격 사퇴

▲ 김경룡 대구은행장 내정자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인규(64) 전 DGB대구은행장의 후임으로 선정된 김경룡(58) 내정자가 2일 자진 사퇴했다. 5월 18일 최종후보자에 이름을 올린 지 40여 일 만이다. 그는 “실추된 신뢰 회복과 새로운 미래를 위해 전 임직원의 역량 결집을 위해 자진사퇴를 결심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대구은행 내외부에서는 김 내정자의 자진 사퇴가 김태오 DGB 금융지주 회장이 추진 중인 인적 쇄신의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김 내정자가 용단을 내린 배경과 앞으로 끼칠 영향 등을 짚어봤다.

△외압에 의한 사퇴? 금융당국 요구 수용?

김경룡 내정자의 자진 사퇴 소식을 접한 김진탁(80·계명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사외이사) 대구은행 이사회 의장은 ‘외압’이라는 표현을 썼다. 3일 자 긴급이사회를 소집한 김진탁 의장은 “외압 때문에 사퇴한 것으로 의심돼 김 내정자 본인 입을 통해 배경을 들으려고 한다”며 “배경 파악 후 향후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겸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임직원 모두가 마음을 모아 최우선으로 조직 안정을 도모하자면서 사퇴 배경을 밝힌 김 내정자의 목소리로 정반대다. 김진탁 의장은 김 내정자와 박인규 전 DGB 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의 대구상고 선배다.

다른 한편에서는 김 내정자가 DGB금융그룹이 사활을 걸고 있는 하이투자증권 인수작업 등 사업 다각화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 금융당국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판단도 나온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대주주 적격성을 강조했다. DGB금융지주의 새 수장으로 김태오 회장이 취임하면서 비자금 조성 등으로 중단됐던 하이투자증권 인수작업에 시동을 다시 건 상황에서 박인규 전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낙점한 김 내정자 자신이 남아 있으면 인적 쇄신 등의 측면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숙원인 증권가 진출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김 내정자는 검찰 수사의 칼날을 비켜가긴 했지만, 경산시 금고 유치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 자녀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사내는 물론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도의적 책임 추궁을 받아왔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물의를 일으킨 비리 관련자가 임원이나 은행장으로 있으면 금융당국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컸다”며 “김태오 회장도 김 내정자도 여기에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김 내정자가 박인규 라인이라는 이유로 승인을 계속 미루면서 거부 사인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했다.

▲ 대구은행 제2본점 전경

△ 대대적 인적 쇄신 기폭제

김 내정자의 자진 사퇴는 DGB금융그룹이 금융당국의 신뢰를 회복할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적 쇄신이 제 속도를 낼 수 있어서다. 4~5일께 금융지주 이사회를 열어 DGB금융그룹 지주사와 계열사 임원 30명 중 절반 이상으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을 단행할 예정이다. 대구은행 노조 측은 “근본적으로 지역사회에 물의 일으킨 점에 대한 근본적인 쇄신의 출발점이 됐고, 전 임직원이 지역민과 고객에게 사과하는 의미도 담을 수 있다”고 했다. DGB대구은행의 상무급 이상 임원과 DGB생명, DGB캐피탈 등 7개 계열사의 대표이사, 부사장 등 30명은 지난달 12일 첫 외부 출신 회장 취임에 따른 인적 쇄신에 동참하자는 뜻에서 사표를 제출했다.

△ 회장·은행장 겸직 가능성은?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해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한 결정이 뒤바뀔지도 관심거리다.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면서 제왕적 지배구조로 인한 경영 투명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온 이후 조치였다.

김 내정자가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대구은행 내부에서는 김태오 회장이 대구은행장을 다시 겸직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DGB 한 관계자는 “수성구청 펀드 손실보전 혐의나 채용비리 등 여러 가지 비리로 엮인 인사들이 많아서 새로운 대구은행장을 선임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여 김태오 회장이 겸직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사회를 통해 분리했던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회장과 은행장 겸직 체제를 금융당국이 용인할 리 없다. 겸직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냈다.

대구은행 노조 측은 "새 수장 선임은 전적으로 이사회 결정에 달려있다. 노조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박무환 기자
박무환 기자 pmang@kyongbuk.com

대구취재본부장. 대구시청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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