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구멍가게였다 부식이며 잡화며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걸 팔았다 구멍 같은

방도 하나 딸려 있었는데 가족들 모두가

거기서 지냈다 단골이 있었지만 상가에

대형마트가 들어섰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매일 밤 구멍에 들어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평상 다리를 지탱하던 막걸리 냄새가

이제는 꿀벌을 몰고 오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구멍과 세상을 연결해주던 오토바이를

도둑맞듯 팔았고 누나는 그 구멍에서 초경을

했다 팔아야 할 물건을 온 가족이 다 쓰고

구멍가게에 구멍만 남았을 때 누나와 나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내달렸다

구멍가게에서는 구멍을 팔지 않는다





(감상) 거대한 자본에 밀려 가족의 생계였던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장면이 눈물겹습니다. 구멍가게에서 구멍을 팔 수도 없고 하느님도, 세상의 그 누구도 구멍을 사가지 않고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서울로 떠난 누나와 나는 부디 구멍에서 잘 벗어났기를 바랍니다. 블랙홀 같은 거대자본의 구멍이, 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가진 자의 시꺼먼 구멍(속내)이 없다면 오누이는 아마 험한 세상을 더 잘 견뎌내고 있을 겁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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