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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하 특례법)은 ‘특례’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사고를 낸 차량운전자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도 돈이나 보험으로 때울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특례법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교통사고로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뒤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피해자를 사고 장소로부터 옮겨 유기하고 도주하거나 사고 후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경우와 중앙선 침범 등 12대 중과실을 범한 경우만 처벌할 수 있다. 이같은 경우를 제외한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형사처벌할 수 없다.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다.

또 피해배상액 전액을 보상하는 자동차종합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된 경우에도 광범위한 처벌 면제 규정을 두고 있다. ‘피해자가 신체의 상해로 인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불치 또는 난치의 질병이 생긴 경우‘ 와 중앙선 침범 등 12대 중과실에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다.

1981년 법률이 제정될 때부터 말들이 많았다. 법학자 김일수 교수에 따르면 입법 당시 고급공무원의 자가운전 방침에 따라 자가운전을 해야 했던 공직자가 사고를 내는 경우 직위해제 같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게 근본원인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고 법률을 도입할 때 국민 안전이 주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는 걸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특례법이 자동차 생산업체를 지원하고 자동차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19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은 ‘마이카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자동차 보급에 열을 올렸다. 80년대 넘어오면서 자동차 보유 대수가 크게 증가했다. 특례법 입법 취지로 신속한 피해보상, 국민 편익 증진을 내걸고 있지만 특례법 탄생에는 경제 성장 논리와 효율 중심의 사고가 짙게 배어있다.

법 제정 이전에는 자동차 사고로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재물을 파손하는 경우 형법에 따라 처벌받았는데 전두환 정권 들어와서 사법정의를 무너트리는 입법이 이뤄졌다. 사람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는 입법을 대놓고 한 것이다. 보험을 들면 처벌을 면하게 되면서 물신주의와 인명 경시 풍조가 널리 퍼졌다. 경제 성장 제일주의의 극단적인 폐해 사례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는 4,185명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지만 영국의 3배, 일본과 독일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정부는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반으로 줄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교통사고를 줄이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정부 당국이 내어놓은 목표 달성 방안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 문제다.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자 반으로 줄이기’방안의 하나로 특례법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구체적인 입법 로드맵이 제시된 건 없고 말 그대로 추후 검토하겠다는 수준의 입장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교통안전에 관심이 있고 교통사고 사망자를 크게 줄이는데 의지가 있다면 특례법 폐지를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돈 있는 자가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법률의 이름으로 유전무죄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보험 들었다고 죄를 면하게 만든 것은 중세에 면죄부를 연상케 한다.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가해자에게 웃음을 주는 법률의 역사는 37년이면 족하다.

마침 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이 특례법을 가해자보호법으로 규정하고 폐지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주 의원의 입장표명을 계기 삼아 특례법 폐지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정부 스스로 약속한 ‘교통사고 사망자 반으로 줄이기’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관련 부서는 발 벗고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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