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잠 어느 중간쯤에서

지금 눈을 뜬다면

엄마의 잘캉거리며 끊기는 도마 위 칼질 소리와

젊은 아버지의 목소리 속으로 나는 빠져 나가

동생들과 말다툼 끝엔 꼭 싸움을 하던

긴 잠의 어느 지점인데

지금 눈을 뜨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찬장을 꺼내느라 고개 숙이던 엄마 뒤로

너는 이적지 쏘댕기다 밥 때가 돼서야

기들어오나 하는 잔소리를 등허리에 묻히고

감쪽같이 그렇게

들어와 버리는 시간인데





<감상> 꿈이 꿈 인줄 알면 꿈이 아니므로 현실과 꿈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 있다. 그러니 눈을 뜨고 싶지 않은 심정이고, 내가 꿈속에서 또 다른 꿈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과거의 긴 잠이다. 즉, 엄마의 칼질소리와 젊은 아버지의 목소리, 동생들과 말다툼이 들려오는 소리다. 이 지점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현재 꿈을 꾸고 있으니 엄마의 잔소리가 감쪽같이 꿈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모든 게 꿈이기 때문에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 생(生) 자체가 환상이고 꿈이 아닌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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