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두른 '병산'의 절경과 함께 느릿느릿 즐기는 여유
“외국인들에게 우리 건축의 특징을 알려주고 싶을 때, 그가 시간만 있다면 나는 하회마을 언저리에 있는 병산서원으로 안내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거의 반드시 그들은 이 놀라운 공간과의 조우로 깊은 사유에 들어간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황이 명종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아니하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시대의 부름에 응해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 그들이 몸담았던 공간에서도 분위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황의 도산서원은 꼬불꼬불 돌아 들어간 산중에 자리 잡고 있어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에 비해 병산서원은 비록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해자(垓子)를 둘러치긴 했지만 모래벌에 당당히 나선 헌헌장부의 기상을 지녔다. 만대루에 서서 큰소리로 글을 읽으면 마주 선 화산이 절벽 끝으로 감아 올려 하늘에 계신 성현께 이을 듯하고, 시를 지어 낭랑한 목소리로 읊으면 낙동강 흰 물새가 이를 물어 온 세상에 전할 것 같다.
우리 건축은 무릇 그곳에 사는 사람의 것이다. 밖에서 보는 자의 즐거운 시선을 위한 것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건강과 향유를 위해 지어졌다. 안에서 하루라도 지낸다면 서원이 지닌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낙동강 따라 하회마을까지 잇는 ‘병산·하회 선비길’로 향한다. 병산서원을 출발해 하회마을까지 가는 방법은 입교당 뒤 화산등산로 길과 낙동강 강변을 따라 걷는 하회마을길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산(屛山)’의 절경과 선비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하회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그 옛날 병산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학문에 대한 고민을 덜어내고자 걷던 길이자 서민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는 길이다. 강과 산이 함께 흘러 하회마을의 풍수지리적 아름다움과 자연의 풍광,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며 걸을 수 있다. 병산서원 화장실에서 강 따라 이어진 큰 길이 하회마을길이다. 선비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겸암 류운룡을 비롯해 풍산 류씨 사람들 무덤이 있는 화산 중턱 고갯마루에서 뒤를 돌아보면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너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넉넉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서애 유성룡을 흠모하고 따르던 조선시대 영남의 숱한 선비들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오고 갔을 것이다. 길 곳곳에 안도현 시인의 ‘낙동강’, ‘허도령과 하회탈이야기’ 등이 있어서 걷기의 재미를 더한다. 낙동강을 끼고 산비탈을 오르다 숨이 찰 때쯤이면 정상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조망하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하면 하회마을에 다다른다. 정자에서 하회마을로 내려가다 한눈에 보이는 마을 풍경은 걸어왔던 노고를 풀어준다.
하회마을로 내려와 천천히 곳곳을 둘러본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 오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씨족마을, 양반마을의 형태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음은 물론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고 있어 2010년 7월 31일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벚나무가 심어진 낙동강 둑길을 따라 걸으면 부용대와 만송정 등 하회마을의 또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고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산과 들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지난여름 폭염에 시달렸던 지친 몸과 마음을 불어오는 바람 속에 맡기고 싶은 날 이 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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