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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성일 편집부국장
실업률 증가와 고용감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자영업의 위기 등으로 나라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국민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국가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 행복지수도 비례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본다.

국민총생산이 아무리 높아져도 빈부의 격차는 깊어만 가고 생존에 위협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빈곤계층은 오히려 가난할 때보다 사회적 비용이 많이 지출되기 때문에 점점 더 생활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후진국보다 선진국이 더 많음을 통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경제 수준이 낮을 때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철학대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선진국이 된 지금은 돈이 없이는 한순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사회적 구조가 돼 버렸다.

인간 존엄의 척도인 삶의 철학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불편함을 넘어 미래는커녕 눈앞의 생활을 위협하는 가난은 인간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면 가난은 불편하고 초라한 것이기만 할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낮은 경제 수준에도 행복지수가 세계 1위인 부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 히말라야 동쪽 해발 3, 4천m 고산 준령지대, 중국과 인도 대국의 틈바구니 인구 75만의 소국, 은둔의 왕국, 행복지수 1위의 나라, 그곳이 부탄이다.

부탄은 비록 현대국가 부(富)의 잣대인 국민총생산(GNP) 수준은 낮지만, 국민총행복지수(GNH)는 세계 1위이다. 국민총행복지수가 국민총생산 지수보다 높은 유일한 나라이다. 부탄에는 ‘불행한 사람’이 없다.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인간을 ‘경제의 도구’로 보지 않고 ‘행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부탄에는 ‘행복한 사람’과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국민을 구분한다, 그래서 왕들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한다.

생산성과 소득, 성장 주도가 아니라 국민총행복 증진이 부탄 국가정책의 철학이다. 타인이 행복해야 나의 행복이 증진된다는 공동체 행복을 추구한다

나라가 가난한데 어떻게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인가. 자본주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는 행복의 척도를 경제력, 즉 돈이 많고 적음이 좌우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많다고 우쭐대거나 적다고 초라해 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불교가 국교인 부탄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의 삶을 극락으로 받아들인다. 지금이 행복하면 그것이 극락세계라는 것이다, 현재의 삶이 육체적으로 힘들면 전생에 편하게 살아온 업보(業報)로 여긴다. 그래서 현재를 충실히 살다 보면 다가오는 생(生)에는 선업(善業)을 받는다는 믿음이 충만하다.

그래서 그들의 눈빛은 세상 번뇌가 사라진 ‘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자신은 이미 해탈했다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교육도 서구식 자본주의 교육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삶과 지혜를 배우는 국민총행복 교육과정을 학습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사는 우리가 ‘성장’을 ‘행복’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지난해 처음 만난 부탄의 자연과 사람들,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불교사원, 새벽 강 안개, 자꾸만 뒤따라오던 강물을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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