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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삶의 시작은 출생으로 출발하여 끝은 사망의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이 순환하는 인생 열차에 몸을 싣고 생로병사 노선을 따라 이 세상에 먹고, 놀고, ‘구경하며 소풍 왔다 가는 여행’이 우리 인생길이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란 숫자에 매달리고 세월에 강제로 떠밀어 끌려간다. 숨차고 힘든 고달픈 인생살이지만 그래도 달콤한 사람 향기 나는 먹고, 노래하고 흔드는 즐거움도 있기에 세상사는 보람도 있다.

세월이 좋아 우리가 사는 백세시대 옛날에는 환갑 넘겨도 장수했다고 잔치를 했는데 지금은 구순 넘긴 장수노인 모시는 집도 흔하다. 한평생은 하루 단위로 시작되고 쌓여서 환갑이 되고 백 세도 된다. 하루살이는 하루가 평생이다. 인간 일생 축소판 하루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시작되어 밤에 잠자리 들면서 마무리하게 된다.

흘러간 시간의 발자취 순간들을 더듬어 되돌아보거나 저녁 기도하면서 명상에 잠길 때 ‘마음’의 내 ‘자아’가 ‘육신’의 ‘나’에게 말로 최면을 걸어준다. ‘오늘도 각박한 하루 사느라고 수고했다’하며 감사하다고 심신(心身)에게 속삭인다. 자화자찬 침묵의 대화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아침에 어김없이 또 찾아오는 내일이란 하루에게 더 수고하기 바라면서 잘 해보자는 무언의 다짐일 것이다.

영화 필름처럼 돌아가는 요지경 세상은 생명을 다하지 않는 한, 직장에 다니던, 놀던, 자던, 시간은 하염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돌아가게 되어있다. 단지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돌아가다가 좀 느리게 돌아갈 뿐이며 직장에 다니고 안 다니고는 잠깐 쉬고 더 많이 쉴 수 있다는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의 삶의 일정이 많이 쌓아가고 축적되어 이력과 경륜으로 그 속에서 인생의 법칙을 찾아내고 방법을 발견하여 마음을 비워 쾌락과 욕망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능력이 젊은이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티격태격하며 아등바등하며 속세의 삶을 살면서 어제와 비교하고 또 1년 전, 10년 전, 20년 전 오늘을 떠올리며 견디기 힘든 고통이 따를 때 때로는 일기장을 들추어 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서 위안하며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젊을 때는 노인을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들었고 사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나?” 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드니 노인들은 외형 육신보다도 내면인 마음과 영적으로 위안과 안식의 차분한 삶을 살아가기에 아름답게 보인다.

팔순을 넘긴 원로선배 형제, 자매님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삼복더위와 엄동설한에도 성당에 오시는 것을 보면 무척 부럽고 존경스럽다. 파란만장했던 인생여행에 험난하고 긴 세월을 정말 “사시느라고 정말 수고가 많다”는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가깝게나 멀리 뒤따라 가고 있는 후배들도 경륜과 기도로 다듬고 터놓은 탄탄대로의 곧은 인생길을 수월하게 여행하며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 경기도 광주에 사시는 사촌 형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씨에 콩 나는데 콩 나고, 팥 나는데 팥 난다는 대쪽같이 소신 있고 빈틈없는 형님이기에 너무 슬펐다. 형수님이 다가와서 형님은 ‘이승에 구경하러 소풍 왔다 갔다고’ 하는 말 한마디 일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늘나라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 각자의 인생 열차이기에 두려우면서도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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