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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병원장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다. 대추 한 알이 둥글어지고 붉어지는 데도 이렇게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사람이 한 사람 태어나서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태풍과 천둥과 땡볕들이 필요할까. 한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기까지는 동네사람들이 다 도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 성격 형성의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발달 단계마다 중요한 과제가 있어서 그 과제를 제대로 잘 수행하여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나이는 어른이라도 ‘애 같은 어른’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마음속에는 다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누구라도 이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행동 한다고 한다. 이 아이가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유치한 행동을 할 것이며 병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병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신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어른의 탈을 쓰고 있는 자라지 못한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가 되는 것이라고 이를 중요시한다.

아기는 출생과 함께 엄마의 젖을 빨아야 한다. 만약 이때 엄마의 젖을 빨지 못하고 격리 시킨다면 평생을 비정상적으로 살아가야 할 정도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6개월이 넘어서면 낯가림이 시작되며 특히 엄마의 존재에 애착행동을 보인다. 이 애착의 의미는 미숙한 개체가 생존을 지키려는 본능적 행동이다. 이 애착을 통해 아기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과 안정감을 찾는다. 앞으로 모든 대인관계가 이 기본적인 신뢰감을 기초로 이루어 질 것이 분명 하다. 이 시기를 구강기라고 한다. 이때 어떤 이유에서라도 애착이 충족되지 않아 기본적인 신뢰감 형성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면 그 아이의 삶은 언제나 큰 태풍 속을 헤집고 다녀야 할 정도의 힘든 삶이 될 수 있다. 즉 구강기 욕구의 좌절이 너무 심해 늘 구강기의 욕구충족에 집착하는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를 ‘구강기 성격’이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나친 의존을 갈구하고 충족이 되지 않으면 우울 해 지거나 자책을 하며 많은 날들을 원망으로 한숨지으며 독립적인 인생이 힘들어 지는 성격이라면 이를 구강기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혹은 남에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우거나, 큰소리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쉽게 술을 먹고 취해버리거나, 음식을 쉼 없이 탐하거나 혹은 먹고 토하거나, 내용이 매우 빈약한 열변을 토하거나(침을 튀겨가며), 남을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혹은 욕설을 하는 등등의 모습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성격이라면 이 또한 구강기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성장이 구강기에서 멈춰 서 있는 까닭이다.

구강기는 대략 한 살까지 기간으로 본다. 구강기를 벗어나면 다음 과정은 ‘항문기’로 이어지며 이 시기 또한 이루어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 이 항문기 과정에서 과제를 다 못하거나 충족이 되지 않으면 이 또한 이 시기에서 성장을 멈춘 고착이 일어나게 된다. 훗날 성인이 되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항문기 성격’이라는 독특한 모습으로 퇴행 될 수도 있다.

마음의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을 치료하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현재 증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면 옳은 치료가 될 수 없다.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해 온 삶의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겪어 온 무서리 몇 밤, 땡 볕 몇 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것을 모르고는 그 사람의 현재 증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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