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식물에 기생한다 입이 없고
항문이 없고 내장이 없고 생식이 없어
먹이 사슬의 가장 끝자리에 있으나 이제는
거의 포식자가가 없어 간신히 동물이다
태어나 일생 온몸으로 한곳을 응시하거나
누군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순간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진다 짧은 수명에
육체를 다 소진하고 가서 흔적이 없고
남긴 말도 없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일설에,
허공을 떠도는 맹수 중에
가장 추악하고 험악한 짐승이 일 년 중
마음이 맑아지는 절기의 한 날을 가려
낳는다고 한다 사선을 넘나드는
난산의 깊은 산통 끝에
온통 캄캄해진 몸으로 그 투명하게
반짝이는 백치의 눈망울을 낳는다고 한다





<감상> 가장 낮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한 순간 사라질 때 이슬은 간신히 동물이 됩니다. 물방울의 결정체인 이슬도, 식물도 모두 동물화 할 수 있는 상상력이 신선합니다. 맹수가 일 년 중에 마음이 가장 맑은 하루를 선택해 낳은 알이 바로 이슬이라는 발상 또한 흥미롭습니다. 눈망울이 가장 순수해 질 때 그 속에 이슬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 눈동자를 보는 사람도 선한 동물이 되고 맙니다. 반면에 가장 추악하고 험악한 눈동자는 번개와 천둥이 칠 것입니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