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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오늘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하였을까? 떨어뜨린 볼펜을 줍거나 입을 가리고 웃는 것 외에 무엇을 하였을까? 간혹은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고 손사래를 저어 누군가의 말문을 막기도 했을 것이다.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도 했을 것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을 나서다 오물을 손에 묻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무한하다. 그 일을 열거하기보다는 차라리 손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더듬어 보자. 당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을 비볐을 것이고 전기 스위치를 누르거나 방문을 열었을 것이고 이를 닦거나 찻잔을 들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다독이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손 없이 가능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또한 손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충분히 쓸모 있는 도구이다. 가령 아침 출근길에 반가운 동료를 만났는데 손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개를 흔들고 머리라도 맞대며 인사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걷고 싶은데 손이 없다면 어깨를 부딪치며 걸을까, 발이라도 걸고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자. 만약 손이 없다면…당신은 사랑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손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는 어김없이 나를 무릎에 눕히고 배를 쓸어내리곤 했다. ‘미야 배는 똥배 엄마 손은 약손…’ 희한한 일은 그렇게 손으로 배를 쓸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릎 위에서 한숨을 자고 나면 엄마의 손이 쓸고 간 느낌이 오랫동안 온몸에 남아 있었는데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선연하다. 이렇듯 손은 치유의 힘까지도 가지고 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나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눕고 싶은 날에 꾀병처럼 배앓이를 앓으면 엄마의 손은 배를 쓸어내렸다기보다는 마음을 쓸어내린 것이었으리라.

또 손이 특별하게 쓰이는 경우는 수화를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다. 그들은 소리 없이 수다를 떨고 슬픔을 나누고 웃음을 나눈다. 그 모든 것을 오직 손이 감당한다. 그 소란스러운 수다의 풍경을 마주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 속으로 끼어들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슬며시 웃어보기도 한다. 그들 대화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손이 보여주는 현란한 대화는 꽃이 피는 모습 같기도 하고 벌이 날아다니는 모습 같기도 하여 미소를 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래전 아르헨티나의 동굴에서 수많은 손이 찍혀있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그것은 약 9천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아이 손처럼 작고 예쁜 손의 도장들이었다. 두툼한 마디의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 암각화에서 전문가들은 손도장을 찍어서 무언가에 대한 신호를 보내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그들은 손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손도장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그들의 대화가 분명 그러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지금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글을 쓰고 있다. 내 손은 두껍고 마디가 굵고 손등에는 혈관까지 울퉁불퉁하다. 그렇지만 이 손이 없었다면 입이나 다른 신체를 이용해 글을 썼을 것이고 그 불편함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손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오늘 오후에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딸아이의 배라도 쓰다듬어줘야겠다. 내 엄마의 손이 그러했듯 내 손도 약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손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약손이 될 수 있다.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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