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뤄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에 그의 말과 글을 정리한 자서전 ‘운명이다’의 선거구제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견해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1노 3김(노태우 경북 대구, 김영삼 부산 경남, 김대중 호남, 김종필 충청 기반)’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 중심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도라도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 끝에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선거구제 개편에 합의 했다. 당시 합의사항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 10% 이내 확대 여부 등을 포함해 검토’하는 것이었다.

3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본격 논의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선거구제 개편이 이번에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축소·비례확대’, 자유한국당은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단식으로 받아낸 의원정수 확대를 전제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약속이 흐지부지되고 있다. 선거구제 개편의 본질은 구시대에 만들어진 정치 질서를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여야는 정치발전을 위해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권력 한번 잡는 것보다 낫다’던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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