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감상> 그해 우리는 섣부름, 졸음, 다짐, 노래였습니다.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습니다. ‘녘’은 같은 때에,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무렵이었을 겁니다.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모두 사랑이 영원할 것 같은 날들의 일이었습니다. 사랑은 영원을 추구할 뿐 영원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바람과 기대였을 뿐입니다. 깊이 사랑할 때 깊이 잠들지 못하는 선잠이거나, 사랑이 떠난 이후에도 잠깐 든 선잠이거나 둘 다 참으로 아련합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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