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의 양심’(지은이 배리 골드워터·옮긴이 박종선· 출판사 열아홉)
보수주의자의 고전 ‘보수주의자의 양심’(지은이 배리 골드워터·옮긴이 박종선· 출판사 열아홉)이 출간됐다.

우리나라 보수는 반공과 국가개발주의를 통해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것은 한 시대를 위한 전략일 뿐,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원칙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그런 성공 신화에 매달린 나머지, 시대의 변화에서 낙오했다. 오늘날 보수의 몰락은 탄핵이 아니라도 이미 예고된 참사였다. 이제라도 ‘보수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고전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 정치가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다.

보수와 진보는 선악의 문제도, 정오(正誤)의 문제도, 신구(新舊)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원칙과 방식 상의 ‘차이’의 문제다. 무엇보다 보수주의는 인간이 각자 독특한 영혼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라고 간주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본질은 자유다. 본질인 자유가 위축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인간의 자유가 침해당하면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상처를 입게 된다.

무엇보다 저자는 ‘큰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대공황을 계기로, 민주당이 20년간(1932-1952) 집권하며, 뉴딜정책을 통해 국가의 기능을 확대했다. 뒤이어 아이젠하워 공화당 정권이 8년간(1952-1960) 집권했으나, 골드워터가 보기에는 뉴딜정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다시금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지경이 됐다. 실제로 1960년에 케네디를 앞세워 민주당이 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이런 순간에, 이대로 가다가는 자유가 실종돼 보수주의가 몰락할 것이라는 진단과 더불어, 그에 대한 처방을 담은 것이 바로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다. 저자는 보수의의 원칙을 제시하고 국가 권력의 자기증식성을 지적한 다음, 다양한 아젠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가 제시한 원칙은 네 가지, 즉 개인의 자유, 시장경제, 작은 정부, 강력한 국방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 보수주의의 기반이자, 공화당 노선의 전범이 됐다. 나아가, 그것은 오늘날 공화, 민주 양당정치의 정책적 플랫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보수주의의 원칙은 체계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정치인이 됐다. 그는 순식간에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1964년 대통령선거의 공화당의 후보로 선출됐다. 후보 수락연설에서 그는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처럼 그는 유연한 전략적 고려없이 오로지 소신과 원칙에 충실했으나, 그로 인해 파열음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우익 극단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본선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그가 이긴 것은 50개 주 중 6개 주에 불과했다.

모두가 그의 재기불능을 예상했으나, 머지 않아 그가 제시한 보수주의 원칙은 재조명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그 자신도 정치적으로 재기했으며,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레이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지식인 등이 그를 추종했다. 그리해 그는 ‘44개주를 내주고 미래를 얻은 사람’, ‘가장 영향령있는 낙선자’등의 칭호를 얻으며, 평생 공화당의 원로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상원의원으로 총 5선을 하며 30년 동안 상원을 지냈다.

한마디로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미국 보수주의를 되살리는 불씨의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책은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과 더불어 미국 보수주의와 공화당 노선을 앞장서서 이끈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특히 “미국인 백만 명이 그(골드워터)의 책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이 나라 전체와 세계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러셀 커크의 비평은 유명하다. 이 책은 무려 3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미국 정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도 거의 매년 다양하게 재출간되고 있다.

정치인이 위기에 처하면 대개는 원칙보다 타협을 선택해 생존을 도모한다. 그러나 골드워터는 보수주의가 위축될 때, 타협이 아니라 선명한 원칙을 선택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적 생존이 아니라, 보수의 원칙 그 자체였다. 비록 당장의 선거에서는 참패했을지라도, 바로 그 참패를 통해 보수주의는 불씨를 지폈다. 한마디로 사즉생(死則生)이다. 비록 60년 전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고전이자, 정치적 선언문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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