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다 싶어서
나 이 남자 안에 깃들어 살
방 한 칸만 있으면 됐지 싶어서
당신 안에 아내 되어 살았는데
이십 년 전 나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나 당신 밖에 있네
옛 맹세는 헌 런닝구처럼 바래어져 가고
사랑도 맹세도 뱀허물처럼 쏙 빠져나간 자리
25평도 아니야
32평도 아니야
사네
못 사네
내 마음의 공허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 하네




<감상> 제 아내도 사글세 단칸방에 시집올 수 있나 하였더니 당신밖에 없다했습니다. 세월이 마음을 변하게 하나 봅니다. 옛 맹세는 헌 런닝구처럼 바래어져 가고, 구멍이 숭숭 뚫리기도 합니다. 방 한 칸에서 32평까지 왔는데, 이제는 “사네 못 사네”하면서 공허감이 밀려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삿짐을 꾸립니다. 20년 전에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당신 밖”에 있습니다. 하지만 바깥에 너무 오래 있지 마세요. 마음속으로만 이사 가세요. 밖에는 별 사람 없고, 부부지간도 이제 친한 친구처럼 지내기로 해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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