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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거슬러 민주화시절 이전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탄핵의 정당성과 헌재의 판결을 부정하는 세력들의 막말과 고성이, 급기야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로 도배되고 있다. 정당의 잔치라고 하는 제1야당의 전당대회에서 빚어진 일이다. 1988년 국가모독죄를 폐지한 이후 국가원수에 대한 비방은 정부의 비판이나 정책의 실패 때마다 종종 나오는 것이었지만, 이처럼 공당의 대표와 최고위원의 후보자들이 국가 최고지도자를 향해 욕설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5.18 망언’과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발언은 결국 화려한 과거를 잊지 못하는 제1야당의 회귀본능으로 퇴행적 구태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정치인의 험악한 막말은 어제오늘만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공개적인 전당대회에서 강도 높은 욕설은 과거 정부에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정보의 왜곡시대, 비협조적인 정부의 비판세력에 스스럼없이 재갈을 물리던 그 시절, 서슬 퍼런 권력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던 그때를 회상하면 나가도 너무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5·18을 은폐하고 광주의 실상을 왜곡하던 비민주적인 과거가 우리의 어둡고 부끄러운 자화상임에도 불구하고 회고적 향수를 잊지 못한 정치인의 본능은 수구적 작태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공당의 전당대회에서 계속되는 정치인의 선동과 막말은 반 헌법과 반 민주주의적 행위이며 국민의 분열을 조장하는 의도된 정치인의 기만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퇴행이 5·18부정이다. 단언하건대 5·18민주항쟁을 부정하는 한국사는 의미가 없다. 헌정질서 파괴와 부당한 공권력으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를 만든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에 억눌린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기폭제였다. 돌이켜보면 현대사의 민주주주의 포문은 3당 합당부터이다. 3당 합당은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충청권 정치 세력의 결합이 만든 지역주의의 시작이기도 하다. 엄격히 말해 현대 정치사의 주류인 TK와 PK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보의 도시이다. 1960년 자유당 정권 독재와 부정부패에 항거한 대구의 2·28민주화운동이 그 출발이며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산학생시위가 그 증거이다. 그러나 지역주의를 조장한 ‘우리가 남이가’는 YS의 문민정부를 탄생시키는 동시에 보수의 이념을 학습하였다. 다시 말해 지역적 보수이념은 문민정부시절부터 시작된 YS와의 의리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재평가된 5·18민주항쟁을 부정하는 것은 경상도 의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TK와 PK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버님의 사진을 내려 달라”는 요구가 명분 있게 들리는 이유도, 5·18망언 등으로 더 이상 개혁보수를 기대하기 힘든 자유한국당의 정체성이 YS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음이다.

선거 때마다 몰표는 의리이기도 하지만 결국 지역의 발전과 내 삶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전당대회에서 탄핵과 5·18을 부정하며 일어난 막말과 욕설은 TK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지역할거주의 조장과 TK의 고립을 유도하는 위험한 행위이다. 더구나 최고지도자를 향해 함부로 내뱉는 정치인들의 욕설은 정치의 혐오와 지역주의의 반감을 만든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오늘이 있기까지 혹독한 시련의 세월 속에서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최고지도자를 비방할 수 있을까. 자유와 분방은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 자중하며 지키지 못하면 언젠가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며 국가지도자를 비방하는 공당과 후보자의 막말은 결국 ‘누워서 침 뱉기’일뿐이다. 대통령 탄핵과 대선의 패배, 그리고 지방선거 참패가 지금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재건을 위한 비상시기 임에도 절박하지 않은 자유한국당의 모습은 유권자를 실망하게 만든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창출이며 선거에서의 승리이다. 내년 총선을 위한 준비인 전당대회가 앞으로 나가지는 못할망정 뒤로 후퇴해서는 안 된다. 자유한국당의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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