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한 애인의 무릎에 저녁이 앉아 있다

한 번 만져 봐도 돼?

눈 감고 가만히 저녁을 만져 본다

새벽이 올 때까지
애인의 무릎에 앉아 있겠다는 저녁의 태도는
언제나 옳다
어둠은 수위를 높이고
골목으로, / 골목으로 흘러가고
숲으로 돌아가던 새들은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혀
저녁의 이마를 핏빛으로 물들이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무릎부터 만지는 애는 네가 처음이야, 나를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 거니?

바람이 분다
이팝나무 가로수가 탬버린처럼 흔들린다
골목마다 사용할 / 하루 치 어둠을 나눠주고
피곤한 듯
애인의 무릎에 앉아 있는 저녁의 태도는
언제나 옳다




<감상> 저는 저녁의 태도를 ‘사랑하는 이의 태도’라고 말하고 싶네요. 마음 몰라주는 섭섭한 애인의 무릎에 저녁이 앉아 있고, 애인은 저녁을 만져보는 풍경이 아름다워요. 그것도 새벽까지 어둠과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는 저녁의 태도는 언제나 옳지요. 마음이 통하였는데, 만난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요. 바람이 세차게 불고 가로수가 흔들려도 저녁은 하루치의 어둠을 나눠줄 뿐. 애인의 무릎이라면 피곤해도 늘 앉아 있는 저녁의 태도는 언제나 옳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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