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무렵의 조선 기행문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사람’을 쓴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했다. 로웰은 “조선에선 모자가 존중의 대상이다. 실로 얼마나 모자가 다양한 지, 그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 썼다.

로웰이 여행한 시기와 비슷한 때인 1896년, 당시 조선 사람들의 갓에 대한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괴관파동(壞冠波動)이다. 조선 학생과 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하던 청나라 사람이 주먹다짐을 하다 학생의 갓을 벗겨 짓밟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외국인과의 싸움은 제3국이 재판하도록 돼 있어서 영국 영사관이 판결을 했다. 재판에서 청나라 사람이 조선 학생에게 3원을 배상토록 했다. 학생은 싸움에 대한 재판과 판결은 영국이 할 수 있어도 관모에 대한 모욕은 조선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아 죽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지만 갓에 대한 모욕은 가문과 국가에 미치는 명예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로웰의 말처럼 갓은 개인의 체면과 긍지의 상징이자 나라의 명예와 연결되는 줏대의 상징이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사약을 받을 때나 전쟁터에서 죽기 전에 종종 의관(衣冠)을 정제하고서야 죽음을 맞았을 정도다.

여인은 쪽머리에 비녀, 남성은 상투에 갓을 썼다. 갓은 남성 상징인 상투를 보호하고 권위를 나타낸다. 이 갓이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업체 넷플릭스에 소개된 드라마 ‘킹덤’의 영향으로 갓이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 인기 상품으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왕세자로 나오는 배우 주지훈의 갓 쓴 모습이 멋지게 나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목에도 아예 ‘갓’을 붙여 ‘갓킹덤’이라 부르고, 영어 신의 ‘GOD’과 발음이 같아서 ‘오마이 갓’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패션 디자이너 케롤리나 헤레라가 뉴욕 패션쇼에서 갓을 차용해 눈길을 사로잡는 등 종종 패션쇼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번엔 온라인에서 인기리에 팔린다는 것이다. 이참에 ‘갓 쓴 양반의 고장’ 경북이 한복과 갓 등을 세계인을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관광과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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