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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채점표(2월 25일 자 )가 필요 없게 되었다. 북미 정상은 시험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면서 다음번에 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1차 정상회담 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합의가 나오지 않으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겠다”는 발언을 수차례 하여 결렬 가능성도 상정되었다. 그러나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결렬의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가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내놓고 상응조치로 일부 해제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제재 전면 해제인 2016년 이후 부과된 5개의 유엔 제재 결의안의 항목별 해제를 요구했다. 반면 미국은 영변 시설 외에도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라늄 농축 시설 전체의 폐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입장이 비교적 명확히 확인되었다. 미국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핵물질 생산 시설을 폐기하기 원한다.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으로 ‘미래 핵’ 개발이 동결된 상태에서 ‘현재 핵’에 해당되는 핵물질 생산을 멈추게 한 후 다음 수순으로 생산한 핵탄두와 핵물질, 미사일 등의 ‘과거 핵’ 폐기를 추진한다.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사실상의 제재 완전 해제와 바꾼 후 여전히 남은 우라늄 농축시설과 과거 핵은 계속 보유하거나 이전과 같이 중유 제공, 경수로 건설 같은 제재의 뺄셈이 아닌 보상의 덧셈으로 옮겨가려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단계에서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이 새벽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의 안전담보를 위한 미국의 군사 분야 조치”도 요구할 것이다. 군사 분야 조치에는 사실상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전략자산 전개 중지와 더불어 미국이 한국에게 제공하는 핵우산 제거, 연합훈련 영구 중단, 주한미군의 임무 및 역할 변경, 나아가 한미동맹 해체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회담은 결렬되었지만 얻은 교훈은 적지 않다. 첫째 실무회담의 중요성이다. 극명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았음에도 정상 간의 담판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드러났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개념, 방법, 순서, 범위 등의 측면에서 매우 까다로운 의제이다. 정상 간의 몇 시간 만남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이란 핵 합의를 도출할 때처럼 한 달여를 합숙하면서 목표에 합의하고 이행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로드맵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되었다. 영변 시설 폐기 하나를 합의하는데도 이 정도의 난항을 겪는다면 북한 전체 핵 능력을 해체하는 데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핵을 한 묶음으로 하고, 과거 핵을 다음 묶음으로 하는 두 단계 정도로 축소하여 상응조치를 담은 로드맵을 만들고 비핵화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참여하는 삼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당사자인 한국이 배제된 상황에서 진행되는 논의는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기자 회견에서 다시 한 번 한미 군사훈련의 비용 문제를 언급하면서 “불공정”하다고 비판하였다. 북한은 영변 하나로 제재 전체를 무력화하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이 마련되어 있었고, 언론의 비판이 있어도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었지만 안했다”고 밝혔다. 합의문의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변과 제재 전체를 맞바꾸는 합의문에 서명했다면 북한 비핵화는 여기서 중단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한국이 참여하여 한국의 안보를 볼모로 한 합의를 막고 북한 비핵화를 추동하는 능동적인 노력이 절실한 이유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회담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북한은 참을성이 바닥나서 그들에게 익숙한 ‘벼랑 끝 전술’로 복귀하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늪에 빠진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다시금 강경 정책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원하든 아니든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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