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단기는 나의 님이매/ 내 맘도 떠단기었나이다./ 괴로우신 나의 님이매/ 내 맘도 괴로워하였나이다./ 외로우신 나의 님이매/ 내 맘도 외로워하였나이다./ 오! 그러나 옥중에 계신 님이매/ 우리 맘도 그러하오릿가?//옥중에 드신 님이매/ 맘은 더욱 나와 같이 하나이닛가?/ 전에 같이 하던 맘이/ 오늘 더욱 같이 하나이닛가?/ 님의 몸은 옥중에 계셔도/ 주고 간 님의 맘, 어이 그러하오릿가?/ 벌써 벌써 주고 간 님의 뜨거운 맘/ 아! 나를 어찌 떠나릿가?”(잡혀간 님-도산 선생께 드림)

평양에서 나서 1929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노스파크대학에서 영문학, 템플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한 한흑구(본명 한세광)이 쓴 시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2년 5월에 쓴 시로 그해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폭탄 의거 이후 그 배후로 지목된 도산 안창호가 체포돼 구금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담고 있다.

도산이 체포돼 조선의 서울로 압송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이 미국 동포 사회에 알려지고, 흑구에게도 전해졌다. 흥사단 단원으로 자주 대면했던 도산의 수감 소식은 흑구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가 쓴 이 시는 화려한 수사(修辭)나 은유도 없이 ‘님(도산)이 주고 간 뜨거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심경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에서 종종 은유나 수사가 전하려는 뜻을 에두르는 것이어서 이렇게 직설적 언어를 구사했을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도산 선생에게 바치는 한세광의 시가 흑구문학연구소 한명수 대표에 의해 발굴돼 경북일보(3월 1일자 1·7면)에 소개됐다. 흑구는 1939년 흥사단 사건에 연루돼 피검됐고, 광복 후 1945년 월남했다. 1948년 서울에서 포항으로 거처를 옮겨 지역에 큰 문학적 영향을 끼쳤다. 지역민들이 흑구 한세광에 대해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문을 배워온 사람’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 시의 발굴 소개로 그가 흥사단 단원으로 도산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됐다. 지역에서 수필가나 영문학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한흑구의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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