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정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포항시의원
“나눠 준 것을 도로 거두시면 인심을 다치게 할 것이옵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성안에 건초가 없어 말이 굶으니 병사들의 가마니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그나마도 곧 떨어져 말이 죽으니 말고기를 병사들에게 먹인다는 장면이 나온다.

병사들의 보온용 가마니를 빼앗기 전에 차라리 말을 포기했더라면 가마니도 남고, 말고기도 남았겠지만 어설픈 판단이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다.

최근 정부가 포항 지진피해 재난지원금 감사 결과 중복지급 사례 2078건, 20억4500만 원에 대해 환수할 것을 요구했다. 중복지급 유형을 보면 △소파피해 소유자 지급 1908명 18억7500만 원 △동일피해 물건지 71명·풍수해 보험 중복지급 12명 8700만 원 △상가 건물을 주거용으로 지급 58명 5600만 원 △빈집 지급 29명 2700만 원 등이다.

이중 소파피해 소유자 지급이 전체의 약 92%를 차지하는 소파 피해 소유자 지급분의 경우 2017년 당시 행안부 훈련 상 실거주자에게 지급토록 돼 있었지만 소유자에게 지급됐다는 것이 환수 이유다.

이 제도는 2018년 건물 피해 시 수리보수 의무가 소유자에게 있다는 관련법을 들어 지급대상이 소유자로 변경됐다.

이런 가운데 행안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누가 피해건물을 고쳤는가는 상관없이 소유자에게 지급된 지원금을 환수해 실거주자에게 지급하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포항시 고문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재난지원금 목적에 비춰 목적물 수리에 비용이 쓰였다면 실거주자 소유자를 따져 복잡한 환수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법원 역시 “잘못 지급된 보상금 등의 환수는 공익상의 필요성이 환수로 인한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강한 경우에만 환수처분 하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11두31697판결)’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행안부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던 훈령규정만 앞세워 실질적인 피해수리 여부 등과는 관계없이 환수조치 하라는 명령을 내려 행정의 효율성 문제가 제기됐다. 또 동일지 피해건물에 대한 재난지원금 및 풍수해 보험 중복지급 환수 조치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풍수해 보험은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에 대해 재난으로부터 재기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보상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지원으로 단체보험을 들어 놓았지만 보험보상을 받은 경우 중복지급이므로 환수하라는 것이다.

포항의 경우 풍수해 보험 가입자 중 NDMS(재난관리시스템)에 피해를 등록한 건수는 216건이지만 실제 중복 환수 대상자는 1건에 불과 했다.

재난으로부터 재기할 수 있는 경제적 도움 역할 주기 위해 보험에 가입했지만 대부분이 보험보상을 청구하지 않아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킨 것이다.

여기에 보험보상을 받으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환수조치 하라는 행안부의 감사결과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재난지원금을 중복해서 받았다면 환수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잘못 지급된 지원금을 환수하는 것 또한 또 다른 억울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주민과 행정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포항시는 행안부의 감사결과만 앞세우기보다 포항의 특수성과 현장의 목소리를 중앙정부에 제대로 전달해 시민들의 상처와 고통을 보듬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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