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시인11.jpg
▲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
‘형용 모순’이란 말이 있다. ‘똑똑한 바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상반된 어휘가 결합돼 의미 자체의 억지가 풍기는 수사법. 시인들은 이를 즐겨 구사한다.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한용운의 시구가 대표적이다.

감히 연결될 수 없는 낱말들이 빚어내는 폭력(?)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독창적인 조어로 주목을 받으면서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도 그중의 하나다. 지역 발전에 공헌함과 동시에 회사 본연의 활동을 수행하는 형용 모순이 은연중 엿보인다. 기업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언젠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중고생을 대상으로 물었다. 기업의 목적을 ‘사회 기여’라는 의견이 ‘이윤 추구’라는 응답보다 많았다고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회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하다.

내가 몸담았던 은행에선 개인과 법인을 구분하여 고객을 관리한다. 법인 고객인 기업체 대표를 만나면 일견 공경의 염으로 대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나 같은 월급쟁이는 혼자 살고자 버둥대나, 사업가는 수많은 직원들 생계를 도맡기에 그랬다. 문득 자금 사정이 어려워 고뇌하던 CEO가 떠오른다.

기업가는 국부를 창출하고 살찌운다. 우리가 그들을 존경해야 할 이유이다. 또한 사업가는 공공적 책임을 완수할 의무도 부여된다. 국민 경제 주체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양자의 적절한 조화가 시대정신이 아닐까.

도시 국가 아테네는 위기 때마다 명장이 나왔다.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와 살라미스 해전의 승자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러하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동지중해 상권을 장악하면서 해상 강국으로 번영했다.

그 기반은 국방과 문화에 대한 재력가들 기부였다. 자발적인 후원이 아니라 강제적인 방법으로 두 가지를 활용했다. 연극 공연 스폰서를 맡기든가, 아니면 군선인 삼단 갤리선 건조 비용과 노 젖는 선원들 급여를 부담시켰다.

고대 로마의 요직은 무급 봉사였다. 회계 감사관·원로원 의원·법무관·속주 총독 그리고 집정관에 이르기까지 무보수로 일했다. ‘명예로운 권력’으로 공직에 종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시쳇말로 일종의 재능 기부이다.

미국의 기부 문화는 19세기 조지 피보디와 존스 홉킨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교육과 구호에 대한 쾌척이 전통으로 정착되면서 카네기와 록펠러로 이어지고, 게이츠와 버핏이 앞장선 ‘더 기빙 플레지’로 정착된다. 부호들 재산 사회 환원 서약.

특히 철강왕 카네기는 미국이란 나라의 본질을 완벽히 실천한 인물이다. 갑부가 될 자유와 재물을 나눠줄 책무를 철저히 이행했다. 가난한 이민자로서 자수성가한 그는 미국의 철강업계를 장악했고, 제조 원가 개념을 도입해 그 가격을 대폭 인하함으로써 전체 경제에 혜택을 입혔다. 이는 그가 존경 받는 근거가 됐다.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스럽다고 여겼다. 84세에 잠을 자다가 숨질 때까지 소유 재화를 모두 처분했다. 2811개 무료 공공 도서관 건설과 7689대 교회 오르간 구입 지원도 포함됐다. 꿈을 이루는 미국의 체제를 격찬한 그는 당시의 영웅이었다.

기부는 인류의 지성과 감성이 가미된 발명품이다. 빈자와 부자, 약자와 강자가 혼재하는 세상을 따뜻이 보듬을 윤활유. 올해 100세를 맞는 김형석 교수는 말한다. 인생에서 멀리 가기 위해선 남에게 베풀어라. 그래야 행복하다고.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