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은 맛있다
오래된 경전은 질겨서 더욱 맛있다
사원을 어슬렁거리던 개는 경을 물고 벌판으로 내달린다
이런 경은 하도 읽어서 너무 뻔하다는 듯
표지를 한 장 뜯어 맛을 본다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겨 질겅질겅 씹는다
경전은 맛있다
맛있는 경전은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다
마침내 한 권의 경을 다 뜯어먹은 이빨에도
경이 잔뜩 끼어 있다
크엉크엉 짖을 때마다 경들이 운다
벌판을 울리는 한밤의 독경 소리
스님이 알면 경을 칠 일이지만,
엄연히 개는 경을 먹고
온 들판에 경을 싸고 다닌다
벌판의 모래 한 알, 햇빛 한 줌에서도 경전 냄새가 난다
그것은 가끔 눈보라처럼 몰려가
설산에서 밤새 울기도 한다

<감상>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경전은 질겨서 맛있고, 냄새가 나고, 울기도 합니다. 자연은 곧 경전이 되고 맙니다. 햇살 경전, 모래 경전, 새소리 경전 등 자연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맛있게 먹고 들판에 싼 똥도 경전이 됩니다. 똥의 경전을 먹는 풀들과 곡식들과 나뭇잎들도 잘 자랍니다. 이들을 먹는 생명들도 경(經)을 취하니 만물은 분리되지 않고 윤회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은 굳이 해석하려 듭니다. 스님이 경(黥)을 치더라도, 자연 그대로 몸으로 느낀다면 바로 경(經)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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