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들은 벼슬에 나아가거나 물러설 때 자신의 신념을 적어 상소문을 왕에게 올렸다. 벼슬에 들 때나 물러날 때의 출처론(出處論)이다. 선비들은 공직에 나아가 나라와 구성원을 위해 일할 때와 물러나 수양하며 온축해야 하는 때를 명확히 구분했던 것이다.

선비는 왕이 부르면 일단 조정에 나아가지만 왕이 민심을 외면하고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자리를 박차고 관직을 떠났다. 선비들에게 충성의 대상은 왕이 아니라 백성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시대의 진정한 정치는 가차 없이 돌아서는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비의 출처론을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 퇴계 이황이다. 퇴계는 그의 호에서도 드러나듯이 여러 번 왕에게 ‘물러나 시냇가에 머물기(退溪)’를 청했다. 퇴계는 1534년(중종 29)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시작한 이후 1569년(선조 2) 69세에 관직을 사양할 때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입각과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퇴계는 젊었을 때 공부를 하다가 몸을 상해서 약골이었던 데다 벼슬보다 학문연구에 더 관심이 많아서 관직을 사양하기 일쑤였다. 퇴계는 그를 불러 벼슬을 주려 했던 명종에게 상소문을 올려 사양의 뜻을 밝혔다. “어리석음을 감추고 벼슬을 훔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는 자들이 일은 하지 않으면서 봉급이나 챙겨가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헛된 이름으로 세상을 속이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숨겨가면서 굴욕을 무릅쓰고 조정에 나아가는 것을 방관해도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직책을 감당할 수 없으면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다섯 가지 자문(自問)이 담긴 상소였다.

퇴계는 만류하는 선조의 허락을 겨우 받아 마침내 마지막 귀향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고향 안동까지 250㎞를 12일에 걸쳐 걷고, 70여 ㎞는 배를 타고 낙향하는 여정이었다. 벼슬을 버리고 돌아오는 ‘퇴계 마지막 귀향길 ’ 재현행사가 귀향 45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0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귀향길 구간마다 퇴계가 벗들과 나눈 시를 낭송하고 강연회도 연다고 한다. 꽃 피는 봄, 퇴계 귀향길 같이 걸었으면 좋겠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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