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좋을 때도 있다.

늦가을 오후 한 때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봄 날 화단에서 꽃이 피는 소리가 들렸고, 여름 느티나무 무성한 잎으로 소나기도 내렸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는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기다린다.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귓전을 곤두세운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인지 몰라. 소리에 스며있는 의미를 읽고 싶다.

기차 소리가 들린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기차소리는 언제나 힘이 있다. 우렁찬 기적소리는 역으로 진입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외침이리라.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힘찬 소리는 플랫폼을 벗어나면서 가속을 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기차소리 쯤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달음박질을 하고 공을 쫓기도 한다.

기차소리 뒤따라 공부소리가 이어진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음성이 섞여 들려온다.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여럿이서 동시에 대답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막대기로 교탁을 치며 꾸중하는 소리도 섞여 있다. 시간이 물처럼 흐른 순간, 적막을 깨뜨리면서 수업 종료를 알리는 스피커소리가 울린다.

아이들은 옥상에서 울려오는 이 소리가 교실 대탈주의 신호로 들리는지 동시에 문을 박차고 튀어나온다. 쫓고 쫓기는 함성이며, 종횡무진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들로 어지럽다. 아이들의 소란을 귓등으로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시간만큼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이 소리가 저들의 키가 자라고 마음이 성장하는 소리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또 한 번의 멜로디가 모든 것을 평정해준다.

세상이 조용해지자 혼란스럽던 나의 머릿속도 진정이 된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이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살펴보니 여름을 장식했던 장미꽃 시든 꽃송이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먼 곳에 첫눈 소식이 들려오는 데, 철 늦은 가을비가 소리 내며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말을 걸어온다.

꽃밭에 대화가 피어난다.

장미줄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느티나무 이파리 하나가 수직으로 끼어든다.

지난 여름 지독했던 더위는 잊고

황금빛 찬란한 가을을 맞으며

정답게, 씩씩하게, 더 멋지게 지내자고

머리를 맞대고 도란거린다.

성큼 다가온 겨울,

북쪽에서 찬바람을 앞세우고 소식이 도착했다.

저기 첫눈이 온다네.

첫눈의 추억을 생각하며 겨울을 기다린다.

개구쟁이들도 귀 기울여 듣고 있다

행복한 미소가 교정에 번지고 있다.

소리와 소리 속에 세월이 흐른다.

운동장 건너 들려오는 힘찬 기차소리는 아이들의 젊음 같다. 교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이들의 미래가 있다. 쉬는 시간 복도를 뛰는 소리에 건강이 묻어난다. 시든 장미꽃에 떨어지는 빗소리에는 여름의 반성이 있다. 붉게 물든 느티나무 이파리 하나 둘 떨어지는 소리에 아이들의 성숙이 있다.

늦가을 오후 햇살이 곱다.

아이들은 스쳐가고 스쳐오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가슴 속에 희망의 봄꽃을 피우고 있었지. 느티나무 짙은 그늘 아래에는 한 여름 정열이 휴식을 모르고 있었어. 살며시 다가온 가을 단풍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우리 보람을 추억했는데. 오늘 멀리 있는 친구가 전해온 한 자락 첫 눈 소식이 너무 따스하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