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기다림 미학과 겸손의 길을 안내하는 노거수들을 보호해야

김인규 수필가

내가 살고있는 산촌의 집 앞에는 나무밑동이 2m가 될 정도로 아름드리 노거수 밤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세월의모진 풍상에 수많은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해마다 가을철이면 먹음직스런 알밤을 많이 생산해 나를 즐겁게 해주곤 한다.

이곳에 정착한지 10여년 쯤 되던 해 밤나무의 수령이 궁금하여 이 곳 출신의 팔십대 어른에게 여쭈어 본적이 있다. 그 어른은 당신이 어렸을 때에도 그 밤나무에서 몰래 밤 서리를 했다는 기억을 꺼내 주었다. 그 말씀에다 어림 짐작을 보태 백 살쯤은 되어 보이는 노거수로 유추해 보노라니 나무에 대한 외경심이 저절러 생겨났다.

집 주변에는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빽빽이 송림을 이루어 경치가 장관이었지만 최근 재선충 때문에 몇 년 사이에 하나 둘 베어지고, 밤나무 혼자 외롭고 쓸쓸해져 보기에 매우 안쓰럽다. 늙음은 나무과에도 예외가 없는 듯 늦가을이 되면 주변의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잎을 모두 떨구어 나무의 근력이 벌써 약해져 있음을 느끼게 해 개인적으로 늙음의 설움 같은 점을 공유해본다.

백년 세월은 한마을의 역사로 자리매김하여 어른대접이 마땅하기에, 그 앞을 지날 때면 경배하는 마음으로 옷깃마저 여미게 된다. 오래 전 신광 마북저수지 둑의 손상으로 수몰위기에 놓인 노거수를 지대가 높은 곳으로 거금을 들여 이식하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동네 연로하신 어른들이 합장한 채 인사 주문으로 "동네 할배 이사 간다!", "동네 할배 이사 간다!" 라고 외치는 모습을 지켜 본 기억이 새롭다. 그 어른들이야말로 노거수를 가슴속 깊이 존경심으로 숭배하는 마음을 갖고 계셨다.

어느덧 노거수는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액운을 막아주는 영물로 승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기성종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잡신의 숭배 같지만, 태고적부터 장구한 세월을 지켜온 자연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발로라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 될, 마치 고향같은 믿음의 마음이 든다.

노거수는 오랜 나날 태양, 달, 구름, 눈, 비, 바람에 부대끼며 절기를 소화하면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요구을 내놓는 것은 전혀 없다. 그 나무에 걸맞은 스토리를 만들어 미화시키는 것은 순리를 역행하지 않으려는 양심이 있는 인간의 몫이 될 뿐이다.

한 마을의 생성과 도시화로 진화하듯이,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발화하여 거목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의 경이 그 자체다. 우리 인간은 조용히 기다림의 미학과 겸손의 길을 안내하는 노거수들을 보호해야 한다.

지금 산천의 절대 수목인 소나무가 자칫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재선충을 방재하고 피해목을 제거하는 것을 연례행사처럼 진행하지만 관리기관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 벌채업자들이 감염목을 제거하는 것을 지켜보면 충해를 입은 나무들을 완전 제거하지 않고 남겨놓아 주변이 다시 감염되는 악순환에 그들이 방재 목적보다 일자리 보전이 우선인 것 같아 관리능력 부실을 지적하고 싶다.

언제나 그러하듯 형식적이고 구호적인 관의 전시행정의 전형이다. 행정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울창한 산림 그 자체가 국력이다. 오늘도 집 앞 노거수 늙은 밤나무는 내게 무언의 충고를 한다. 제발 글로 촐랑대지 말고 너나 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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