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어둠이 깔린 한반도 운명 개척해 나갈 대통령의 외교 비르투 기대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올해는 기묘하게도 남북 모두 불길한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월 평양에는 23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져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다. 전라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수백 명이 수장됐다. 엄청난 인명이 희생된 것은 선장이 승객구조 임무를 완수할 의지가 없어서고, 해경이 몸 던져 구조할 의지가 약해서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침몰하지 않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경력 3년의 미숙한 조타수가 맹골 수도(水道)로 운항하지 않았다면 뒤집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 권력의 정점에 있는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지 3년이다. 공식 후계자 훈련도 3년에 불과했다.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20년 수업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만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침몰한다면 북한의 동포는 험한 바다에 내버려지는 꼴이다. 백성을 살릴 의지로 충만한 노련한 구조의 정치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중순 5일간 내로라하는 정상들의 외교전이 펼쳐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다녀왔다. 대통령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덴마크, 프랑스, 중국 등과 정상급 회담을 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타결 노력에 합의했다. 청와대는 "동북아 평화 및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확대했다"고 자평했다.

박 대통령이 방문한 이탈리아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와 반도(半島)의 지정(地政), 국민성, 역사성 등 유사점이 많다. 두 나라는 음악에서도 오케스트라 합주보다 독주 독창에 강세를 보인다.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장한나 장영주는 앙상블이 아니다. 세계 3대 테네 중 한 명 이자 성악계의 거장 파바로티도 이탈리아인이다. 현재 공공부문의 방만한 경영과 부패까지도 빼 닮았다.

동로마제국이 1453년 붕괴한 뒤 근대국가 탄생하는 시기에 이탈리아는 피렌체 등 4~5개로 분열했고, 스페인 프랑스가 제집 드나듯이 침공해 지배했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일본의 수없는 침략으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헤쳐 나온 민족이다. 미국 일극 체제가 흔들리는 점도 비슷하다.

중세를 깨고 근대를 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싹이 자랐다. 그 중심에는 피렌체에서 1498년부터 1527년까지 외교관 정치가 사상가로 활약한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있다. 6권의 저술 중 대표작인 '군주론'은 독일 등 군주제 국가의 교과서로, '로마사논고'는 프랑스 네들란드 등 공화정 국가의 교과서가 됐다. 군주론의 압권은 '포르투나(fortuna)'에 대응하는 '비르투(virtus)'다. 홍수가 나도 제방을 쌓으면 범람을 막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홍수는 포르투나, 제방은 비르투다. 운명은 인생의 반만 주재할 뿐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비르투 즉 의지의 몫이라는 것이다.

대국굴기(大國起)를 꿈꾸는 중국과 아베의 자민당이 이끄는 일본이 한 세기 만에 다시 동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해 한반도 주변에서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미숙하고 위험한 북한 정권이 이북에 똬리를 튼채 미국 일본 러시아에 추파를 던진다. 한반도에는 캄캄한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박대통령에게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외교의 비르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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