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싸워야할 때 발빼는 정치권 생산적인 일로 투쟁 벌인다면 국민이 진정으로 재미를 느낄 것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재미있는 것을 신문에 쓰라는 지인의 주문을 받았다. 다수의 바람인걸 모르는바는 아니다. 미디어가 대중의 말초신경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모두 잡사(雜事)에 매달리면 권력자들은 맘 놓고 권력을 향유한다. 시사(時事)가 중요하고 개인과도 직결되는 이유다.

겨울을 재촉하는 만추에 두 건의 싸움판이 동시 상영 중이다. 싸움구경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지만 이 역시 별로 재미가 있지 않은 것 같다. 즐겨보는 관객도 없고, 가치도 없는 싸움이다.

하나는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국회 예산 챙기기 싸움질이다. "저XX 깡패야" "양아치 같은". 예산을 다루는 국회 예결소위에서 여야(새누리당 김모 vs 새정치민주연합 강모) 의원 간 치고받은 말이다. '양아치'와 '깡패'간의 국가 돈을 두고 벌인 '쩐쟁(錢爭)'이다.

예산배정은 소비활동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싸움이다. 올해 배정받지 못한 지역은 다음해에 배정받게 돼있다. 도랑물을 이쪽 논뙈기에 먼저 대고나면 다음 비가 올 때면 저쪽뙈기 논에 물이 들어간다. 그래도 먼저 물이 들어간 논에 사는 개구리들이 환호한다. 정작 진짜 싸움을 해야 할 때는 발을 슬그머니 뺀다. 국정감사 기간에 일감을 A국회의원에게 줘봤다. 싸워야 할 대상인 피감기관 직원들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잘 모르던지 잿밥에 어두워 염불에는 관심 없던지 둘 중에 하나일터.

또 하나는 '십상시의 난'으로 표현하며 '정윤회 국정개입' 에 대해 단독 보도한 세계일보와 정윤회건의 싸움.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청(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이 달린 문건을 보도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비전을 놓고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씁쓸하다. 이 사건은 하루빨리 진화돼야 할 시급하고도 중요한 사안이다. 세월호 침몰이나 대구지하철화재사건만 시급한게 아니다. 후자는 사고이지만 전자는 음모이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authoritative) 배분'이라고 정의했다. 이때 권위는 권위주의와 다른 만인이 인정하는 권위다. 이 나라 정치의 가치배분은 권위가 아닌 이전투구(泥田鬪狗)에 가깝다.

투쟁은 사회에 피할 수 없는 실존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해 늑대다"라는 토마스 홉스가 보는 사회는 노골적이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요, 금수도 아니다"는 파스칼의 관점은 그래도 덜 부끄럽다. 버트런드 럿셀 경(卿)의 싸움론이다. "인간들 싸움에 세 가지가 있다.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 인간과 인간과의 싸움, 인간과 그 자신과의 싸움이다"(이극찬의 '희망의 철학'). 럿셀경이 말한 인간과 인간과의 싸움이 정치나 전쟁에 의해서 행해진다.

소비가 아닌 생산적인 일 그리고 권력투쟁이 아닌 비전으로 전쟁이나 투쟁을 벌이면 얼마나 좋을까. 성장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복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일(中日)과의 총성없는 경제전쟁에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 어떤 통일모델이 이상적인가 하는 사상논쟁 등…. 이런 걸로 박 터지게 투쟁을 한다면 국민이 진정으로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인간세상에 싸움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협력하면서 발전해온 것도 사실이다. 손바닥과 손등처럼 뗄 수 없는 우리사회의 싸움(爭)과 협력의 관계를 어떻게 조합하고 조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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