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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지난 9월 9일 새벽 4시경, 서울 마포구에서 일어난 화재에 제일 먼저 피하여 소방서에 신고하고도 잠든 주민을 구하기 위하여 다시 불타는 원룸 건물 안으로 들어가 21개의 방문을 일일이 두드리고 16명의 목숨을 구했으나, 자기의 몸은 구하지 못한 청년이 있었다. 안치범이라는 성우(聲優) 지망생은 평소에도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야 한다는 도덕의식과 정의로움이 몸에 가득 배긴 청년이었다. 이제 고인이 된 그를 위하여 성우협회는 명예 성우로, 부산외국어대학은 명예 졸업장을, 그리고 정부는 의사자로 지정할 것이라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현재 한국사회는 부도덕이 극에 이르렀다. 가장 친하고 서로 아껴주어야 할 부모 자식 사이에 살인사건이 빈번하고 노인들이 젊은이로부터 욕설이나 주먹질을 당하기 일쑤다.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모욕을 당하고 길거리에 남녀학생들이 부끄러움 없이 예사로 끌어안는다. 돈과 권력이 이 사회의 최고가치가 되어, 돈이 권력을 낳고 권력은 돈을 만든다. 일찍이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군자의 나라는 ‘해동무례지국(海東無禮之國)’이 되었고 소인배의 나라가 되었다.

심리학에 ‘강화이론’이란 것이 있다. 인간의 행동경향은 반복되는 쪽으로 강화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행동에 대하여 칭찬을 하거나 상을 주면 그 같은 행동이 자주 하게 되고 결국은 착한 행동을 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징벌의 효과는 그 반대다.

매스컴과 SNS 시대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뉴스와 정보의 홍수 속에 살며 이들은 우리의 행동방식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친다. 뉴스의 단골주인공인 정치인들의 부도덕성과 수준 이하의 당리당략의 싸움,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무례한 말씨와 비윤리적인 언행, 체면도 염치도 없는 인간군상의 행진, 폭력을 동반한 이권 다툼 등. 이 뉴스들은 국민의 삶을 지치게 하고 세상을 밝게 보지 못하도록 한다.

필자는 근래에 이번처럼 우리를 감동하게 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거의 들은 적 없다. 최근까지도 수많은 의인이 배출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일은 정말 극적이다. 고 안치범 씨의 의롭고 용감한 행동은 이기적이고 무미건조한 이 사회를 윤택하게 할 청량한 샘물이 되고 어두운 세상을 밝힐 희망의 빛이 되었다. 따라서 고인에 대한 국가적 보상은 법대로 하더라도, 대대적인 선양사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사회는 비난과 불평에는 익숙하나 칭찬과 공감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위급한 상황에서 도와주면서 살아야지, 나만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의인 안치범. 얼마나 훌륭한가! 옛말에 “나쁜 일은 숨겨주고 착한 일은 선양하라고 했고(隱惡而揚善)”, “착한 자는 아름답게 기리고 능력이 부족한 자는 딱하게 생각하라(嘉善而矜不能).”고 했다. 이 각박한 시대에 어떻게 하여 이 같이 훌륭한 인생관이 정립되었는지를 조명하는 기획취재와 학술적 검토가 필요하고 추모 기념행사는 물론, 작은 드라마라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흔한 축제와 행사 가운데 의롭고 용감한 한 청년의 행동을 기리는 특별이벤트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제발 선행과 의거가 매스컴에 주된 소식으로 자리 잡아 사랑과 의리의 행동이 강화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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